녀자의 머리치장에서 주목되는것은 얹은머리로부터 쪽진머리로 바뀌여진것이다. 이 시기에 널리 쓰인 녀자의 쓰개로는 갓, 조바위, 남바위, 풍차, 아얌, 수건 등이 있었다. 량반집 녀자들이 쓴 갓은 비단인 검은라와 라초 그리고 참대, 기름종이 등으로 만들었는데 주로 여름철에 썼다. 조바위와 아얌도 량반집 부녀들이나 부유한 집 부녀자들이 썼는데 가을과 봄에 귀나 뺨을 가리울수 있게 만든것이였다. 그 당시에 새로 생겨난 녀자의 쓰개는 족두리와 화관이였다. 족두리는 원래 양반집 부녀자들속에서 얹은머리 대신에 쓴것이였고 화관은 이전에는 궁중례식때에 쓰는 쓰개로 리용되였댔으나 이 시기에 와서는 결혼식때에 많이 쓰게 되였다.
19세기 후반기-20세기초에 이르러 옷차림풍습에서는 옷감과 옷의 기본종류와 형태 그리고 옷차림새에서 일정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와서도 우리 민족 인민들이 사용한 옷감은 여전히 무명이나 베를 위주로 하였지만 19세기말에 신분제도가 약화됨에 따라 비록 신분은 <<천>>이지만 생활이 부유하면 비단이나 명주로도 저고리를 만들어 입을수 있게 되였다. 또한 이 시기에 물들인 옷감을 종전에 비하여 많이 리용하였는데 이것은 규모가 극히 작기는 하였으나 염색공업이 일정하게 발전한 사정과 관련되는것이였다.
19세기 후반기~20세기초의 우리 민족 옷차림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저고리와 바지, 치마, 겉옷, 쓰개, 신발 등으로 크게 나누어볼수 있다. 그런데 그 종류와 형태에서는 성별에 다라 차이가 있었다.
남자가 늘쌍 입는 옷은 바지와 저고리였으며 로동할 때 우에 입는것을 등거리, 아래에 입는것을 잠뱅이라고 하였으며 겉옷비슷한것은 큰저고리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