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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풍습의 변천
http://hljxinwen.dbw.cn   2008-12-03 14:16:34
 
 
 
 
 

  17~19세기 전반기에 수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옷감생산이 늘어났는바 이때에 생산된 옷감은 주로 베, 무명, 모시, 명주였다. 이밖에 비단도 생산되였는데 그중 갑사, 은초사 등은 여름, 가을, 봄에 입는 옷감으로 리용되였고 공단을 비롯한 광택이 나고 깨끗하게 짠 비단은 겨울옷감으로 리용되였다.

  17~19세기 전반기 옷의 구성은 이전시기와 다름이 없었으나 그 종류와 형태에서는 일정한 변화가 일어났다.

  17~19세기 전반기의 그림들을 통해서도 알수 있는바와 같이 그 당시의 남자저고리는 녀자저고리보다 품도 넓고 길이도 퍽 길었으며 바지는 통과 가랭이가 넓어서 가랭이끝을 여미고 거기에 대님을 매거나 행전을 쳤다. 녀자저고리는 품이 좁고 길이도 짧았다. 한 문헌에서는 녀자저고리감이 남자것의 3분의 1밖에 안 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 시기의 녀자저고리의 모양이 15~16세기의것과 거의 비슷하나 품은 좀 좁아지고 길이는 짧아졌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녀자저고리가운데서 독특한 것은 삼회장저고리와 반회장저고리였다.

  녀자들은 아래에 보통 바지 또는 단속곳, 속속곳치마를 입었고 량반집 녀자들은 거기에 무지기 등을 더 입었다. 녀자속곳과 단속곳은 품과 가랭이가 넓었다. 바지도 품이 몹시 넓고 주름을 잡았는데 가랭이 끝은 몹시 좁았다. 17~19세기 전반기에 널리 입은 치마로는 거들치마, 도랑치마, 행주치마 등이 있었다.

이 시기의 남자겉옷으로는 도포, 창의, 심의, 쾌자, 두루마기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이가운데서 널리 보급된것은 도포였으며 새로 생긴것은 두루마기였다. 도포는 원래 봉건량반들만이 입을수 있었으나 18세기말-19세기초에 이르러 <<량인>>가운데 부유한 계층들도 입을수 있게 되였는바 이것은 당시 18세기에 인민들이 처음으로 입기 시작한것으로서 무릎아래까지 내려가는 긴 겉옷이다.

  17~19세기 전반기의 옷차림풍습에서 특이한것은 머리장식과 쓰개의 변화였다. 남자들은 갓을 썼는데 갓에는 삿갓, 종이삿갓, 방갓, 초립 등 여러가지가 있었다. 특히 이 시기에 가장 발전한것은 말총갓이였다. 갓을 쓸 때에는 반드시 망건을 썼는데 망건우에 탕건을 쓰는 경우도 있었다. 탕건은 감투처럼 생긴것으로서 농민들은 그것만을 쓰고 다니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가 올 때에는 종이를 기름에 절여서 만든 갓모를 덧썼다. 갓의 크기와 모양은 신분에 따라 서로 달랐다. 량반들이 쓰는 갓은 큰것이였고 농민들이 쓰는 갓은 그 보다 훨씬 작은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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