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도 착한 사람을 깔본다.
어느 마을 입구에 사당이 있는데 그 사당 안에는 나무로 깎아 만든 신상(神像)이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나이가 개울을 만나 건너자니 옷을 벗어야겠고 뛰어 넘자니 개울의 폭이 넓어 건너지도 뛰넘지도 못하고 망설이다가, 가까운 곳에 사당이 있는 것을 발견하자 그는 서슴없이 사당으로 들어가서 다짜고짜 깎아세운 목상(木像)을 들어다가 개울 위에 걸쳐놓은 뒤, 신상을 밟고 건너갔다.
그런데 그자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오던 어떤 사람이 뒤에서 그자가 하는 거동을 보고 송구스럽고 민망한 생각이 들어 다리로 놓여진 그 신상을 조심스럽게 안아다가 사당안에 제 자리에 세워놓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 날벼락인가. 그 신이 크게 역정내기를,
"저놈이 어찌 내 앞에다 향을 피우고 시주를 않는담."
하면서 곧 그 신상을 다시 갖다 세운 사람에게 두통을 앓도록 하였다.
신상의 옆에서 사건 전말을 다 지켜보고 있던 판관(判官)이란 신상( 이 神像은 다리로 놓여진 신상의臣下格이 된다)이 다른 졸개 신상들과 같이 물어보기를,
"대왕님은 이 어찌한 처분이십니까? 벌을 주기로 말하면 대왕님의 옥체를 들고 가서 다리를 놓고 밟고 간 그 못된 놈에게 벌하셔야지 왜 대왕님을 모셔다가 다시 세워준 그 마음씨 고운 사람에 도리어 벌을 주시는지 저희들은 그 까닭을 알 수 없아오니 밝히 가르쳐 주십시오."
그 대왕신상(大王神像) 대답한다.
"너희들은 모른다. 골려주기로는 악한 자보다 착한 사람이 훨씬 낫느니라." 하였다. 그래서 신도 착한 이를 깔보고, 착한 이는 그 착한 마음 때문에 불의의 화(禍)를 당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