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남자도 수절할라니
지금으로부터 1160여년 전, 신라 제 43대 임금 홍덕왕은 즉위한 그 해 12월에 왕비 장화 부인을 잃게 되었다. 홍덕왕은 일단 부인이 사망하자 마음에 늘 슬픈 생각만 지니고 조그마한 즐거움도 다시는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문무백관들은 왕의 의기저상한 기분을 보다 못해 뉘라 할 것 없이,
<상감마마, 다시 왕비를 세우심이 어떠하니이까?>
하고 강권했으나 그는 번마다,
<아니요. 새란 미불짐승도 짝 잃은 슬픔을 가지는 것이어든 하물며 사람이리오. 어찌 차마 전세에 간 왕비를 잊고 무정하게도 다시 새 왕비를 세울 수가 있으리오.>
하고 단말로 막아 버렸다.
이 때, 궁중에는 수백으로 헤아리는 미색의 궁녀들이 있어 만조백관들은 늘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리따운 미녀들을 골라 그의 침소에 들여 보냈으나 홍덕왕은 번마다,
<아니로다. 나는 장화 왕비를 생각해서라도 너희들을 범할 수가 없으니 각금 나가거라!>
하여, 모두 쫓겨나곤 하였다.
이렇게 그는 왕위에 있는 11년 동안 먼저 돌아간 장화 부인만을 그리어 외롭게 탄식을 하다가 마침내 부인이 돌아간 12월 같은 달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임종 시 그는 숫한 대신들을 보고 유언하기를,
<경들은 들으라. 내 이제 세상을 하직하거든 나의 몸을 외롭고 쓸쓸히 다른 땅에 묻지 말 고 평생에 그처럼 그리고 그리던 왕비의 무덤에 같이 묻어주오. >
라고 했다.
하여, 나라에서는 그의 유언에 좇아 그를 장화 왕비의 무덤에 합장을 했다.
이 일이 있은 뒤로부터 항간에서는 한 남아로서의 홍덕왕의 굳은 절개를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남자도 수절할라니 여자가 수절을 못해?>하는, 음란하고 부정한 여인들을 훈계하는 속담이 널리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남의 홍패 메고 춤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