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 됐다! 그럼 곧추 의주로 올라가야지.》
그는 부랴부랴 다시 의주땅에 이르렀더니 웬걸 인젠 그곳도 외가 흔하여 송도 외값보다도 못하였다.
《에익, 안되겠군! 이제라도 도로 싣고 송도로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겠군!》
이에 외장사는 다시 송도로 내달려 갔다. 허나, 며칠 조히 걸려 송도에 내려와 보니 외는 그만 다 썩어버렸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송도 외장사》란 속담이 생겼났는데 그 속담의 의미인즉 어찌하나 조그만 한 리득이라도 얻으려고 이저 구멍수만 보며 왔다갔다 약게 놀다가 결국에는 랑패만 보는 사람들을 이르는 것이다.
설에도 부모를 모르다니
조선 영조 임금 시절, 어느 해 섣달 그믐날 저녁이었다. 어사 박문수가 민정을 살피고저 삼잔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한 촌집에 들려 하루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그가 피곤한 몸을 달래고저 방금 자리에 누웠는데 아랫방에 모여 놀던 애들이 제법 원놀음을 시작했다.
마침 그집의 여남살 나는 애가 원님이 되어 좌우를 호령하는데,
《여봐라 듣거라!》
《예-이.》
《고을의 일이 많기도 하다만 오늘은 우선 이 웃방에 객을 정한 저 어산가 뭔가 하는 작자부터 치죄를 해야겠다!》
(아니, 이 애들이 언제 허리에 찬 나의 흥패를 보았단 말인가!) 박어사는 이렇게 꿈틀 놀라고 있는데,
《예-이》
소리와 함께 볼기를 짱짱 내리치는데 박문수로서는 이건 실로 모를 일이었다.
《아니, 애들아. 이게 대체 웬 일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