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혼사가 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 뒤 이 일을 두고 《숙맥불변》이란 속담을 만들어 조금도 융통성 없는 사람들을 야유, 질책, 조소하는 대명사로 삼았다고 한다.
스스로 제 무덤을 판다
고려 공민왕 때 나라의 권세를 틀어쥐고 있던 불교 우두머리 요승 신돈이 마침내 처단이 되고 불교가 박해를 받게 되었다.
하여, 공민왕은 불교를 국법으로 금하는 한편 중 한 사람을 잡아 들이면 상금 오천 냥고 더불어 벼슬을 겸해 내린다는 방문을 내붙이도록 했다.
이때 리성게집 하인 경삼이란 사람이 함흥 리성계집을 하직하고 안해와 함께 송도로 휘동하여 성문 밖 큰 길가에 초막집을 지어놓고 매일 중 잡으러 돌아다녔다.
그런데, 경삼이는 종시 중을 잡아올 수 없어 본인은 물론 그의 안해도,
《얼른 중놈을 잡아야만 나도 안방마님이 되어 톡톡히 호강을 누릴 텐데.》
이런 어느 하루 마침 저 멀리서 중 하나가 나타났다.
《그럼, 그렇겠지. 하늘이 무심할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