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외국학계와의 교류를 보면 1980년대는 181개 학회가 일본과 교류하고 있었고, 100개 학회가 미국과 교류를 하였을 뿐 외국과의 교류가 없었던 학회도 절반 이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외국학계와의 교류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과학기술
1945년 광복 당시 한국의 과학기술의 수준은 의학을 제외하고는 1910년대에 비해서 본질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는 형편이었다. 거기다가 국토분단, 훈련된 과학기술자의 부족과 시설의 미비 등으로 실험 및 연구활동은 부진을 거듭할 뿐이었으며 과학기술교육도 심한 침체를 보였다. 그나마의 과학기술능력도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양분되고 뒤이어 일어난 6·25전쟁은 또다시 과학기술의 발달을 정체시켰다.
그러나 1953년 휴전 이후 점차 복구되어 1950년대 후반부터는 그 동안 관계기관에서 양성된 많은 과학기술자의 등장과 함께 외국원조에 의한 기재의 도입·이용으로 연구활동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특히, 의학이나 화학 등 몇몇 분야에서는 주목할 만한 연구활동이 진행되었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세계적 추세에 발맞추어 초보적이나마 원자력사업도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1959년 원자력연구소가 발족함으로써 대한민국은 근대과학이 시작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무렵 국립연구소는 원자력연구소를 비롯하여 23개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 중 대부분이 생산품 시험에 그쳤을 뿐, 연구·실험 분야에는 손대지 못하는 실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