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가운데서도 유치환(柳致環)·서정주(徐廷柱)·박두진(朴斗鎭)·조지훈(趙芝薰)·박목월(朴木月) 등이 시의 순수성을 고수하면서 광복 후의 시단을 다졌으며, 채만식(蔡萬植)·김동리·황순원(黃順元)·염상섭(廉想涉)·계용묵(桂鎔默) 등이 특히 많은 활동을 하였다. 몇몇 순수작가를 제외한 이들의 작품에는 당시의 사회적 혼란, 남북분단의 현실, 그리고 가난한 생활의 모습을 표현되고 있었다.
이 밖에 이병기(李秉岐)·이은상(李殷相)을 필두로 한 현대시조문학과 유치진(柳致眞)·오영진(吳泳鎭) 등의 희곡문학이 정립기를 맞았으나 수필·아동·번역문학 등은 대체로 부진하였다.
그 뒤 6·25전쟁을 거치면서 1950년대의 문학은 이러한 민족의 비극을 반영하면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때부터 1950년대 말까지의 문학은 주로 ‘전쟁문학’에 포함되며, 특히 1953년 휴전 후의 문학을 ‘전후문학’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 시대의 문학은 주로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를 비롯한 종군문인들에 의하여 주도된 전쟁참여문학의 형태로 전개되었는데, 이것이 전쟁 전의 순수문학과 다른 점은 해방문단에 있어서의 좌우익의 문제가 주로 이념적 논쟁형식으로만 나타난 데 대하여, 전쟁 당시와 그 뒤의 문학은 실제로 전쟁의 비참한 양상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난 점이다.
장용학(張龍鶴)의 〈요한시집〉·〈상립신화喪笠新話〉·〈현대의 야(野)〉, 이범선(李範宣)의 〈학마을 사람들〉, 하근찬(河瑾燦)의 〈수난이대受難二代〉, 조지훈의 시 〈풍류병영風流兵營〉, 김동리의 〈밀다원시대密茶苑時代〉 및 〈흥남철수〉, 강용준(姜龍俊)의 〈철조망〉, 황순원의 〈학〉, 안수길(安壽吉)의 〈제3인간형〉 등은 모두 동족상잔의 참상을 표출한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