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의 국제 외교 행사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났다. 이번 행사를 통해 각국의 외교 력량이 드러나고 평가되었다. 이번 APEC 행사의 금메달은 습근평(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고 은메달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동메달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였다. 그리고 한국의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메달을 따지 못했다.
습 주석의 행보는 단연 돋보였다. 일찌감치 그의 APEC 참석 여부가 국제 뉴스의 주요 관심사였고 미국과의 실무 협상 과정에서도 중국의 요구가 대부분 관철되었다. 어차피 외교라는 것이 당사국간의 리해 관계를 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협상과 마찬가지로 다급한 쪽이 양보하게 돼있다. 미중 갈등 과정에서 중국의 습근평 주석은 뚝심으로 버텼고,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인한 어려움, 바이든 대통령의 래년 대선 위기 상황 때문에 다급한 쪽이 되었다.
습 주석은 APEC 내내 세계 언론의 주인공이 되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습 주석이 주도권을 쥐고 할 말을 다하는 모습이 세계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미중 협력과 국제 문제, 대만 문제 등의 주제에서 습 주석은 중국의 립장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했다. 그것은 중국의 협력없이 미국이 성공할 수 없다는 메시지이고, 미중 량 대국의 협력이 세계 평화와 번영의 유일한 길이라는 메시지였다. 그 결과 량 대국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 소통채널이 복원되었다.
APEC에 참석한 미국과 세계의 경제인들도 습 주석을 만나기 위해 앞다퉈 몰려들었다. 미중기업협의회(USCBC) 주최로 열린 만찬 행사의 입장료는 1인당 2천 달러(약 260만원)였지만 입장권이 모두 팔려서 표를 구하지 못한 기업인들이 대기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질 정도였다. 미국 언론들은 습 주석과 미국의 인연을 대서특필했다. 습 주석이 APEC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같은 분위기에 감정이 격해져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습 주석에게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습근평 주석과의 량자 회담을 성사시켜 체면 치레는 했다는 평가이다. 최근 지지률 하락으로 국내에서 어려움을 겪는 기시다 총리에게는 17일 정상회담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메달을 따지 못했다. 샌프란시스코 APEC의 주인공인 습 주석과의 량자 회담을 위해 물밑작업을 벌였으나, 결국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미국에 무려 72조원을 투자하고 한미일 동맹에 올인했으나,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행사장에서 잠시 만나 대화한 것이 소득의 전부라면 너무 초라하다. 외교 관계에서 일정이 빠듯해 못만다는 것은 그야말로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다. 친분도 없고 리익도 없으니 패싱하는 것이다. 일본에게는 있는 시간이 한국에게는 없었다. 이것이 반중친미로 일관한 한국 외교의 현주소이다.
필자: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서울미디어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