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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라디오TV방송국 10대 아나운서가 들려주는 동북항일련군의 14년간 열혈분투 력사
//hljxinwen.dbw.cn  2021-04-13 10:50:00
 
 

  중국공산당의 백년 분투발전력사에서 룡강 인민들은 당의 령도 하에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가면서 완강하게 분투했다. 혁명, 건설, 개혁에서 꾸준히 중대한 승리를 거둔 그들은 흑토지에서 인류발전력사상 가장 장려한 서사시를 써내려갔다.

  흑룡강라디오TV방송국 대형융합매체보도행사 '아나운서 백명이 당사를 말하다'를 가동

  100명 흑룡강라디오TV 아나운서들이 기념관, 혁명유적지를 탐방하고 눈물겨운 휘황찬 발자취를 찾아 룡강의 우수한 정신을 고양한다.

  

  

  

  

  

  

  14년간 피 흘리며 싸워온 항일전쟁 지금부터 흑룡강라디오TV 10대 아나운서 춘도(春涛)가 여러분들에게 동북항일련군이 14년간 열혈분투한 간고한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항일전쟁의 고난의 세월 속에서 중국공산당이 창건하고 령도한 동북항일련군은 후방에서 홀로 남아 영용하게 싸우고 이발까지 무장한 일본 침략자와 14년간의 간고한 투쟁을 벌여 수십만 일본 관동군을 유력하게 타격하고 견제하여 전국 항일전쟁을 지원함으로써 눈물겹고, 천지를 뒤흔드는 영웅의 력사를 써냈다.

  

  1931년 9월 18일, 일본제국주의는 공공연히 중국 동북을 무력으로 침략하는 "9.18"사변을 일으켰다. 민족이 생사존망의 긴요한 고비에 처해 있을 때 중국공산당은 항일구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인민의 무장반항을 호소하였으며 당이 직접 령도하는 항일무장력량을 창건하였다. 1932년 초부터, 남만(南满), 동만(东满), 길동(吉东), 북만(北满) 지역에 10여 개의 항일 유격대가 세워졌는데 그중 9개가 흑룡강 내에 있었다. 1933년 9월부터 항일유격대는 잇달아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동맹군, 동북반일련합군 등 6개 군으로 개편되였다. 반일통일전선의 방침을 집행하고 실제에 부합되는 유격전쟁의 전략전술을 실행함으로써 어려운 환경속에서 영용하게 싸워 동북항일유격전쟁은 줄기차게 발전하는 좋은 국면을 보였다.

  

  동북인민혁명군 각 부대는 1936년 중공중앙의 "항일구국을 위해 전체 동포들에게 알리는 글"에서 제기한 중국의 통일적인 국방정부와 항일련군을 조직하고 단결하여 일치하게 항일하자는 주장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 각 부는 륙속 동북항일련군으로 개편하여 1937년 10월까지 11개 군, 도합 3만여 명을 편성했다. 이로하여 동북항일무장투쟁은 새로운 발전단계를 열어놓았다.

  

  항일련군 장병들이 사용했던 총기, 신발, 로획한 대포, 이런 동북항일련군박물관 내에 진렬된 진귀한 력사문화재는 우리에게 그 험난했던 항일전쟁의 세월을 알려준다.

  

  이 솥이 바로 항일련군 전사들이 사용했던 '다기능'취사도구이다. 당시 적들의 대규모 봉쇄로 부대가 늘 식량과 약이 떨어진 상황이였다. 항일전쟁을 계속하기 위해 전사들은 늘 나무껍질을 파내고 풀뿌리를 캐여 이 솥으로 삶아 먹기도 하고 늘 산에서 초약을 캐여 이 솥으로 달여 부상자들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했다. 이 솥은 당시 동북항일련군의 투쟁 생활의 간고함을 생동하고 형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어려운 조건 하에서도 동북항일무장력량은 당의 령도하에 여전히 광범위한 유격전을 벌였으며 유명한 오도강전투(五道岗战斗), 빙쟁자전투(冰趟子战斗), 로전거전투(老钱柜战斗) 등은 모두 매복전, 습격전, 파괴전 등 방식으로 적들과 완강하게 싸웠다.

  

  "불에 쬐면 가슴은 따뜻해지고, 바람이 불면 등뒤가 시리다니, 장사님들! 정성을 다하여 눈강평원을 휩쓸자". 이 " 숙영의 노래"는 북만항일련군부대가 서부 원정길에서 겪은 간고한 전투생활의 진실한 반영이다. 적의 집중섬멸계획을 돌파하기 위해 1938년 7월부터 흑룡강 경내에 있는 북만항일련군 주력부대는 리조림(李兆麟) 등 항일련군 장령들의 인솔하에 세 차례에 걸쳐 흑눈평원으로 서진하였는데 약 6개월 동안 1,000여 리를 이동하였다. 원정 부대는 인적이 드문 깊은 밀림에서 행군하고 위험한 초지와 소택을 건넜으며 엄동설한 속에서 그들은 림해 설원을 지나고 배고픔과 추위와 싸워야 했을 뿐만아니라 또 추격하는 적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온갖 험난을 겪으면서 많은 전사들이 희생했으며 , 마침내 소흥안령 서부의 해륜지역에 도착해 흑눈평원에서 광범위한 유격전을 벌였다.

  

  "숙영의 노래" 외에도, 동북항일련군박물관에는 1 급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바로 항일련군 녀전사 리민(李敏)이 보존한 "동북항일련군의 노래집"이다. 이 노래집에 "나는 동북을 사랑한다" "구국 행진곡" "제 3 로군의 창립 기념 노래" 등 48개 혁명가곡이 수록되였는데 이 하나하나의 우렁찬 군가는 수많은 항일련군 전사들이 피흘리며 싸우고, 돌격해 앞으로 나아 가도록 격려했다. 바로 이런 부대가 가장 적은 인원수로 가장 긴 시간, 가장 간고한 의력으로 가장 잔혹한 자연환경하에서 일본군과 14년간 간고한 투쟁을 진행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발자취 속의 이 수자들은 동북인민의 "망국노가 되기를 원치 않고 침략에 굴복 하지 않는" 영웅 서사시, 항일련군 장병들이 나라를 사랑하고 국토를 지키며, 단결하여 침략을 막고 피흘려 싸우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간고하게 투쟁하는 백절불굴의 동북항일련군의 정신이 새겨져있다. 이는 한세대 또 한세대의 룡강 (龙江) 아들딸들이 힘을 합쳐 분투하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격려하였다.

  /동북망 조선어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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