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진
보고싶은 엄마
오늘도 천만번 불러보면서 변함없이 건강하시죠?
오늘이 추석예요. 추석이라면 평시에 헤여져있더라도 평시에 좀처럼 시간을 짜낼수 없는 이라도 이 날만은 만사를 제쳐놓고 동서남북에서, 천애해각에서라도 발걸음을 부지런히 다그쳐 집을 향해, 고향을 향해 그리운 사람을 찾아서, 만나서 회포를 나누고 절절한 마음을 달래건만 머리 들어 혈육 한점 찾아볼수 없는 이국타향에서 불쌍한 우리 엄마는 지금 이 시각 무얼 하고 계실가? 오늘도 혹시 추석인걸 모르고 계신가요?
아침 일찍 우리들은 외할머니께서 손수 지어주신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요. 철없는 동생 민이는 오늘 다만 유치원에 안가고 집에서 맛깔나는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예요.
오늘도 우리 가정의 한 짐을 가냘픈 두 어깨에 짊어지시고 부지런히 무거운 발걸음을 다그치실 불쌍한 우리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몇백년전, 고인이 된 리백선생님의 말씀처럼 머리 들어 휘여청 밝은 달을 쳐다보고 머리 조아리니 머리속은 온통 그리운 우리 엄마생각뿐이예요. 오늘은 바람 한점 없는 참 좋은 날씨였어요. 휘영청 밝은 달속에 엄마를 그려넣고 마음은 납덩이처럼 무거웠어요. 조용히 온 대지에 하얀 은가루를 뿌리고 있는 저 달빛, 휘영청 밝은 달빛속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나를 바라보시는 아름다운 엄마, 지금의 민이의 나이인 5살난 어린 저를 떼여버리고 떠나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줄곧 못빠져나온 저…
10여 년 전 1999년의 해도 저물어가는 11월말, 엄마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시기 며칠전 저를 할빈에서 엄마 고향이신 목단강으로, 외할머니집으로 데려왔지요. 실은 외할머니는 저한테는 낯선 존재였어요. 그때 중학교선생님으로 계셨던 엄마께서 방학때에나 저를 데리고 외할머니와 계서에서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려 다녀셨지요. 낯선 환경에 적응시키려고 엄마께선 일주일동안 매일같이 저를 업고 유치원에 데려주고 데려왔지만 낯설은 외할머니, 낯선 유치원 전 두려웠어요. 그러던 그 날, 그 날은 아주 추웠어요. 저의 어린 기억속에도 그 날은 눈보라 쌩쌩 휘몰아치고 북풍이 기승을 부리며 옷을 헤집고 들어와 가슴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어요. 길이 미끄러웠고 숨쉬기조차 힘들었으며 발걸음을 떼기 장난이 아니였어요. 지금도 키가 크지만 그 때에도 동년배들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자란 저를 업고 간신히 유치원까지 데려다주면서 <외할머니말씀 잘 듣고 앓지 말고 잘 자라 줘!>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던 엄마, 저녁 때면 엄마께서 또 저를 데리러 오시겠지? 하지만 그 날부터 엄마 모습이 깜쪽같이 사라졌어요. 그 때부터 저는 더욱 청개구리였어요. 부모님들의 동쪽에 대한 저의 머리속의 신호는 서쪽였어요. 지금도 저의 방에 커다란 자리를 척 차지한 주인 잃은 피아노, 저의 철없는 칭얼대는 한마디에 선듯 2만원은 주고 피아노를 사오신 엄마, 엄마의 절실한 기대에 대한 일년도 채 안돼 버림받은 피아노…
중국에 돌아와서 체류하는 동안 아침 일찍 깨여나 뚱뚱해진 저를 집주위와 학교운동장을 달리게 하고 줄뛰기를 시키면서 저의 다이어트에 전념했지요. 한번은 제가 잔머리를 굴려 엄마가 정해주신 5바퀴를 가까운 거리로 축소될 수 있는 운동장안쪽으로 달려 엄마와 실랑이가 벌어졌지요. 화가 잔뜩 나신 엄마는 저의 귀쌈을 찰싹 한대 갈겼어요. 주위에 아는 얼굴이 꽤나 모인 자리라 자존심이 아주 많이 상한 저는 엄마를 확 밀치고 달아났어요. 지금의 날씬해진 몸매는 그때 엄마의 톡톡한 한대의 성과예요. 고맙습니다, 엄마. 엄마한테 감사해야 할 일이 또 있어요. 저 혼자면 외롭다고 형제가 있어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닐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어렵게 취직한, 일본사람도 취직하기 어려운 규모가 큰 일본회사를 그만두시고 40세 되는 고령산모의 위험을 무릅쓰고 저한테 귀여운 남동생을 선사해 주셨어요.
엄마께서는 저의 친구들도 많이 사랑해주셨어요. 친구들 놀러 오면 과일을 꼭 쟁반에 담아 제 방에 들여놓았고 가끔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케익을 만들어주시고 카레라이스도 맛나게 만들어주셨지요. 때로는 저의 친구들을 식당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음식도 사주셨고 부모 떠나 객지생활을 하는 얘들을 우리 가족나들이에도 끼워주셨죠.
엄마께서는 항상 저보고 멋진 사람이 되여라 하셨어요. 스포츠든 연예든 숙맥이 되지 말고 어지간히 갖추며 옷은 항상 정결해야 하고 행동거지는 대범하며 사유와 마음은 부자가 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고 자립의 힘을 키우라고. 꾀죄죄하고 궁상맞는 꼬락서니는 엄마는 딱 질색이지요. 남들앞에 나설 때 항상 정결한 몸가짐으로 나서야 남들에 대한 예의고 자신 또한 비굴한 노예가 아닌, 반듯하게 멋있다고 수차례 일러주셨어요. 엄마께서는 항상 주위로부터 실제연령보다 10살이상 젊으시고 모델같다는 말을 자주 듣지요. 저의 어릴 때 귀여운 공주님같은 사진을 보고 친구들도 많이 부러워하였어요.
비록 우리와 같이 지내는 시간들이 적었지만 저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심어주셨어요. 건전한 책 하나가 한 사람의 멋진 인생을 만들어준다고 저의 테블에 손수 책장을 세워놓고 고금동서의 책들을 빽빽히 꽂아주셨어요. 전 알찬 지식으로 꽉 찬 엄마를 통해 어릴때에는 당시(唐诗)를 좀 습득했고 커서는 이 세상 맨처음 고기소만두(包子)를 만든 사람이 제갈공명인것을 알았으며 한 사람에 대한 극단적인 편견을 버리고 인간적인 면을 마음 넓게 봐야 한다는 엄마 말씀에 조조의 다른 한 인간적인 모습을 봤고 우리 한글을 최초에 만든신 분이 세종대왕이신걸 알았어요. 웬만해서 친구들과의 회식자리를 피하고 아침저녁으로 마술사처럼 동양요리 서양요리 여러나라 영양가 많고 색갈 다채로운 음식들을 만들어 우리들을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셨어요. 때로는 저한테 귀여운 캐릭터 앞치마를 두르게 하고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어요. 아마 우리 학급에서 제가 제일 음식을 잘할걸요. 엄마께서는 우리들과 같이 지내는 순간 속에 등을 보여준적이 없었고 동네에 나가셔서 아줌마들과 수다 한번 떨지 않으셨으며 아무리 큰 명절때에도 술을 마시지 않으셨고 마작 치는 모습 한번 보여준적이 없어요. 틈틈히 짬을 타 요리책을 읽으시고 컴퓨터를 검색해 우리의 영양식을 연구하셨고 저와 민이의 노는 생활토막같은 모습을 무비에 담아주셔서 우리들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게 되였어요. 이렇듯 엄마께서는 우리한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저는 어땠나요? 집식구들한테 빚쟁이나 된것처럼 집안에 불화를 거의 매일같이 일으켰지요. 밥투정, 돈투정, 옷투정을 밥먹듯 했고 방을 쓰레기투성이로 만든는 바람에 개미들이 많이 서식하고 호강을 했으며 저들의 왕국을 꾸렸지요. 청춘기에 들어와서는 그것을 빌미로 청개구리본성을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냈어요. 저녁때에만 서로 얼굴을 볼수 있어 돌아온 누나를 보고 좋아라 아장아장 걸어와 반기는 민이에게 밖에서의 화풀이를 마구 해댔고 민이가 장난을 치다가 조끔이라도 저의 살을 다치면 서슴없이 발길을 날렸으며 저녁 늦게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도 거의 책을 보지 않고 텔레비를 제일 높은 음성으로 켜놓았으며 채널을 이것저것 고르면서 집식구들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엄마의 한마디에 저는 열마디로 화답했어요. 엄마 속 많이 상하셨죠. 저는 참 못된 자식이였어요. 그리고 엄마께서 전화를 끊을실 때 꼭 <우리 딸 사랑해> 하시지만 저는 쑥스러워 그냥 묵묵히 전화를 놓아버리지요. 실은 저도 엄마를 무지무지 사랑한답니다. 엄마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조차에 린색한 저 자신이 너무 얄미워요. 저를 이 세상에 낳아주신 엄마, 고맙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엄마를 대신해 민이를 잘 돌봐고 어르신들의 말씀을 잘 들으며 엄마 바라시는 학업에 전념하고 착한 사람이 될것을 엄마와 약속하겠습니다. 사랑해요.
딸 경이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딸아
보낸 준 메일을 받아보고 감개무량하였단다. 5살에 집에 두고 온 그 귀여운 여자아이가 어느듯 성장하여 아릿다운 16살의 소녀가 되여 이 엄마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주다니... 나의 욕심에 어린 너를 외할머니께 맡겨놓고 엄마로서의 모든 책임을 벗어 팽개치며 나 자신만이 고집하는 꿈을 이룩하기 위하여 리상이라면 리상이 되고 욕심이라면 욕심이 되는 집착을 끝내 떨쳐내지 못하고 사랑하는 딸과 정든 고향을 저버리고 무작정 낯설은 일본땅에 들어선지도 어언간 10여 년, 한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10여 년이란 결코 작은 수자는 아니지. 물론 10여 년 사이에 엄마가 대륙과 섬 사이를 오고 가고 너도 일본에 와서 반년간 엄마와 생활한 적이 있지만 너의 곁에 못 있어준 세월이 너무나 많았다. 어렸을 때 의사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생육하지 못하리라는 최후통첩을 받고도 용케도 너를 낳았건만 엄마는 그것에 대한 보답은 너무도 몰인정하였지.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나의 자식으로 태여나 주어, 엄마라는 신성한 이름을 듣게 해주어, 완전한 여자로 있게 해주어 너무 고맙다.
10여년전 모성애의 따스한 손길이 가장 절실한, 5살난 햇병아리같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만큼 가냘픈 여자아이인 너를 등뒤에 세워놓고 앞을 기약할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가는 나의 발걸음은 무거웠단다. 이것은 한 엄마로서 영원한 변명밖에 안되지만 소녀시절에 심어둔 꿈이 어린 너를 외할머니께 떠맡길만큼 컸었나봐.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인 지금의 너보다 3살정도 어린 13살때, 우린 외국어로서 일본어를 배워야 했다. 지금의 너희들은 영어를 배우고 있겠지만. 어느 날, 일본어선생님께서 우리한테 참고서로 <やさしい日本語>라는 책을 나누어 주셨어. 그 때만 해도 우리 시절에는 참고서라는 단어가 어설픈 시대였단다. 지금의 너희들과는 비교도 안되지. <やさしい日本語>라는 참고서는 내가 태여나서 처음 보는, 화려하기 그지없다, 사치하다고 할 정도의 좋은 질감의 책이였다. 책의 겉면과 처음 몇페지는 채색으로 된 사진들이 있었다. 사쿠라 피는 계절에 울긋불긋한, 멋진 나들이옷을 쭉쭉 차려입고 봄놀이에 나선 여유있고 행복해하는 시민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다양한 모습의 빌딩숲, 얼기설기 하지만 질서있게 공중을 헤쳐가르고 있는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立交桥, 일본의 고도로 발달된 것들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이 모든 것들은 고려의 여지도 없이 나의 마음을 바로 사로잡았다. 그날 난생 처음으로 쓰는 일기장에 <일본어를 잘하여 일본에 유학가자!>라고 썼단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세기(世纪)가 교체되는1999년 12월달에 20세기의 마지막 열차에 운좋게 간신히 몸을 실었다. 일루의 실오리같은 희망에 매달려 소녀시절의 꿈을 안고 그리고 착찹한 모순된 심정으로 머나먼 또 다른 의미의 인생의 길에 나섰다. 그날 아주 추웠지. 차디찬 북풍이 옷섶을 헤치고 들어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지만 그보다 어린 너를 떼여버리고 떠나는 나의 심정은 더욱 찢어지고 얼어버렸단다. 그땐 정말루 너와 그 어떤 약속도 할수 없는, 마치 캄캄한 밤에 혼자서 산길을 헤쳐나아가야 하는 상황이었지. 어떤 처지에 부딪칠지 그건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발을 잘못 디디면 자칫하면 천길나락에 떨어질수도 있고 엎어지면 거치른 산길에 얼굴을 할퀼수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허황한 집착에 무모한 짓이 될지도 모르는, 하지만 이미 뒤돌아갈수 없는, 앞으로만 나아가야만 했다...
일본에서의 엄마의 삶은 그 시기 공부→알바→수면 팽이처럼 돌아가는, 여느 유학생들과 다름없었다. 일본유학은 어차피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너한테 미안하지만 나의 사전에 후회는 없다.
장거리 국제전화에서는 그렇듯 서로 애틋하건만 정작 오랜만에 만나서는 상봉의 기쁨도 잠시, 말을 듣지 않는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하면서 너를 원망하고 나무람 하며 타박 주었지. 너의 성장에 맞는 키높이에서 너와 함께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야 할 것들을 나의 욕심에 너에 대한 기대치를 잔뜩 높여 놓고 거기에 못 미친다고, 너를 달달 볶아댔지. 엄마로서 너를 곁에서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할언정 사랑으로 너를 대해주지 못한 엄마라서 너무 미안하다.
지금 엄마 많이 반성하고 있어. 앞으로는 책망에 앞서 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우릴게. 엄마도 이제야 철이 드는가 봐. 사랑해 우리 딸!️
여직껏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어서 고마워. 앞으로도 오늘처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 줘. 사랑해 우리 딸💕
엄마로부터
흑룡강신문사는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조선족연구학회와 손잡고 <당신만의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글짓기응모활동을 펼칩니다. 자신이 직접 겪은 진솔한 창업이야기, 생활이야기면 누구나 도전해볼수 있습니다.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여 흑룡강신문사 및 조선족문학창에 발표를 하며 시상식은 2019년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와 함께 동경에서 진행합니다. 월드로 된 문장을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메일(info@jkce.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글짓기응모협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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