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촨성 야안대지진 소식을 듣고나니 나의 뇌리에는 내가 탕산(唐山)시에서 겪은 한차례 지진이 오련히 떠오른다. 이 지진은 세계를 진감한 1976년의 탕산대지진이 아니라 1991년도의 일이다.
당시 남편과 큰아들이 차사고로 하지가 마비된 둘째아들을 데리고 탕산시 모 병원에 가 있었는데 후에 나도 6살인 외손녀를 데리고 그곳에 갔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집이 마구 흔들리고 천정에 매달린 전구가 너울거렸으며 창턱의 세수대야와 고뿌 등 이 모조리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복도에 쌍지팡이를 짚고 섰던 환자들이 너나없이 쓰러졌다. 이러자 병원안은 아수라장이 되였다. 울부짖음소리, 고함소리가 사방에서 터지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날 한사람은 조급한 나머지 3층에서 창문으로 뛰여내렸는데 그만 다리가 골절되였다.
뒤이어 스피커에서는 이번 지진은 7바르인데 여진이 올수 있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속히 밖으로 피신하라고 거듭 방송했다. 그러면서 밤에 절대 집안에서 자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나와 남편은 외손녀를 데리고 분주히 3층에서 내려와 밖으로 나왔는데 불구자 아들도 제 형의 부축하에 밖으로 나왔다. 공포에 쌓인 사람들이 모두 마당에 나오다보니 사람들이 오구작작 했다.
이날 저녁 나는 외손녀를 어디에다 재울지 몰라 근심이 태산같았는데 대문을 지키는 경비원 노인이 걱정말고 자기 방에 재우라고 했다. 한시름 놓고 우리는 저녁에 입원실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밤이 깊도록 잠을 이룰수 없었다. 이튿날 아침에 밖으로 나가보니 여기저기에 풍막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밤을 새운것이 분명했다. 경비원의 소개에 의하면 이 풍막들은 탕산시 유관 부문에서 특히 세운거라고 했다. 내가 경비원실로 가보니 외손녀는 이때까지도 혼곤히 잠들어 있었는데 그 옆에는 다른 쳐녀애도 자고 있었다.
이번 지진에 놀란 나는 탕산시에 거주하는 나이가 지긋한 한 분에게 76년도때 지진 상황을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말도 말라며 그때 일을 회상하고 싶지 않다고 손을 저었다. 그러면서 일제가 난징에서 무고한 중국 백성들을 대학살해 묻는 만인갱이 있는데 이곳에도 당시 시체를 타당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어 묻은 만인갱이 있다고 했다.
그후 우리 다섯식솔은 특히 탕산대지진전람관을 참관했다. 층집이 몽땅 무너졌는데 땅이 쭉 갈라지기도 하고 움푹 꺼지기도 했으며 철길이 타래떡마냥 비틀리고 구조인원들이 시체를 날라가는 등 참혹한 광경들이 사진과 설명서로 전시되어 있었다. 실로 무시무시한 장면들이였다.
내가 비록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5년 전의 쓰촨 원촨대지진과 이번 야안지진은 그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겠는가 생각돼 가슴이 아파났다. 그런데 텔레비전을통해 원촨의 재건설을 보니 조국이 위대하다는 자부감도 가슴 뿌듯이 안겨왔다.
/정복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