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련재소설 거지왕 김춘삼의 인생이야기 '왕초' 를 오늘까지 련재를 마치고 독자들의 요구에 의하여 한국 제17대대통령 리명박의 자서전인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를 련재한다. 리명박의 자서전은 리명박이 한 기업인으로부터 정치인으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은 이책을 통하여 리명박 대통령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도 터득하게 될것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장한다. /편집자
저자의 말
2002년 새해 아침.
나는 평소보다도 더 일찍 일어났다.
새벽 4시 30분, 첫 례배에 참석하기 위해 한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골목은 어제 내린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되여 있었다. 나는 골목길에 세워놓은 차를 향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곤 곧바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차바퀴가 제자리에서 헛돌기만 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엔진소리만 요란할뿐 제자리걸음이였다.
새벽 어둠속이라 순간 당황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피며 궁리했다. 나는 후진했다가 다시 전진해보기로 마음먹고 차를 움직였다. 그제야 가까스로 차가 빙판길을 빠져나왔다.
나는 차를 몰고 가면서 깨우쳤다.
살다 보면 시련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호흡을 조절하며 속도를 멈출 필요가 있다는것을......
돌이켜보면 나는 정말 바쁘게 살아왔다. 정말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나의 발목을 잡았고 나는 좌절했다. 한때 나는 그를 원망하고 증오했다. 그러나 나를 넘어뜨린자가 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춰서서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내 짧지 않은 휴가는 값진 휴가였다. 그 휴가는 끝났다.
나는 이제 잠시 멈추었던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정월 초하루 새벽!
빙판길을 조심스레 달려와 교회안에 들어선 나는 고개를 숙여 간절히 기도했다.
"처절하게 가난한 로점상 소년이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되가까지의 삶을 감사드리고 내 삶을 통해 터득한 경륜과 지식과 그리고 봉사정신을 국가 경영과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는 이웃을 위하여 쓰일수 있기를...... "
나는 날이 밝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2002년 새해 첫날 아침
리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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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쉰을 넘긴 류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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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을 위해
가진것 다 내주고 다시 빈 몸으로 돌아가는 문추의 가로수들을 바라보며 1998년 11월 5일, 나는 김포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막상 한국을 떠나려니 그 동안의 일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기업에 있었던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후 정치의 길로 들어와 정치 1번지 종로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영광과 더불어 불어닥친 역풍과 시련은 내 인생의 새로운 경험이 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시련의 아픔을 이야기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싶었다. 모든것이 내 탓이지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기업 경영과 같이 정치도 책임 정치를 해야 한다는것이 내 소신이였다.
그래서 나는 스스럼없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잠시 야인으로 물러나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오래동안 깊이 교류해오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도 수상이 되지 전 정치권에서 쫓겨나 망명시절을 보낸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비디오 카메라 한대를 들고 세계 곳곳의 산업 현장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가. 나는 마하티르 수상의 행적을 떠올리며 어두운 터널속으로 들어간것 같은 절망감에서 벗어나 미래를 준비하는 값진 휴가를 갖기로 했다.
마침 전세계는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태였다. 나는 특히 미국이 준비하는 21세기의 국가경영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다. 다행히 워싱턴 D.C. 의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와달라는 초청을 받고 1년간 '기업 경영과 국가 경영'을 연구하기 위해 출국하게 된것이였다.
미국으로 떠날것을 결정하고 나니 젊었을 때부터 바라던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것 같아 마음이 설레였다. 그러나 한편 한국 정치계에서 쫓겨나 망명자의 길에 접어든것 같아 착잡했다.
그 무렵 조선일보에서 건국 50년을 기념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내가 '대한민국 50년의 50대 인물-경제분야 10인중 한사람으로 선정'되였다는 보도와 함께 내가 쓴 '신화는 없다'가 건국 50주년 출판물 50권에 선정되였다는 보도가 나와 한편으로는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떠나기 전 내가 소속한 '새한기독실업인회'는 '대한민국 50년의 50대 인물'에 선정된 나를 위해 축하 겸 환송회를 마련해주었다.
"이제 나는 정치현장에서 잠시 물러나 새로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우리 나라의 미래를 찾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미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고자 합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 결과로 나의 진로가 막혀버렸으나, 결코 좌절하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내 발걸음을 잠시 더디게 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멈추게 하지는 못할것입니다. 이제 정치와 기업에서 한걸음 물러나 난생처음 나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였습니다. 부족한 나자신을 돌아보게 된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오늘 이자리를 마련해주신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 내가 가고자 한는 길을 소신있게 밝혔다. 그것은 경제인이였던 내가 정치인이 되면서 가졌던 신념이였다. 30분 예정의 강연은 1시간 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모두들 조용히 경청하며 흐트러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나는 환송회를 위해 일부러 불러준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내 말을 마쳤다.
"음악에도 쉼표가 있고 운동선수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듯이 이 의원도 휴식할 때가 왔습니다. 고난을 통해 정신과 지식, 미래와 건강을 준비할수 있습니다."
회원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나는 새로운 마음을 다짐하였다.
며칠후 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다.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엘리트 공무원이였다. 나의 자전적 에세이 '신화는 없다' 일본어판을 읽고 감명받았다는 청년과는 그의 건실한 사고와 행동이 마음에 들어 간혹 련락이 닿았던 터였다.
"의원님이 계속 깨끗한 이미지로 남으시려면 정치를 하지 마셨어야 했는데......"
그는 내가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이미 정치에 식상해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전해왔다. 그러나 나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기성 정치인과 다른 비전을 제시하고싶었다. 기존 정치의 높은 벽에 부딪혀 잠시 좌절하게 되였지만 전문 경영인의 경험을 살려 21세기 우리 정치에 새 희망을 불어넣는것이 나의 분명한 지향점이였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이런 저런 념려를 다 뒤로 하고 나는 미국으로 떠나게 되였다. 김포공항으로 가는 동안 안해도 나도 아무 말 없이 차창 밖만을 내다보고 있었다. 출장을 다닐 때와는 달리 이민보따리처럼 커다란 짐에 눌려 있었지만 안해의 어두운 얼굴에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안해는 내가 정치인이 되는것을 말렸었다. 이제 조금 숨 고르며 사는가 싶었는데 다시 세파에 부딪히며 산다는것이 안해로서는 내키지 않았을것이다.
공항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들어서니 출국 날자를 어떻게 알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배웅을 나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 앞에 와서 '리회장님!. 리의원님!"이라고 부르며 공부한다고 떠나지만 망명길이 아니냐고 항의하듯 말을 건넸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았다. 그러자 그들은 갑자기 "건강하십시오! 잘 다녀오십시오!"를 련발하며 '리명박'을 외쳤다. 그리고 모두들 하나같이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그들의 심경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아무 말 없이 떠나는것이 후날 보여줄 변혁을 위해 더 큰 용기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함성을 뒤로 한 채 서둘러 김포공항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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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휴가 중에 만난 희망
미국에 도착한 나는 곧바로 워싱턴으로 가지 않고 시애틀로 향했다. 오래전부터 시애틀 교민들의 강연 요청이 있었으나 시간을 내지 못해 번번이 뒤로 미루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꼭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더이상 미룰수가 없었다.
시애틀로 향하면서 강연을 들으러 올 교민들이 얼마나 있을가 하는 생각에 다소 긴장되였다. 오르막길에 있는것도 아니고 내리막길에 서 있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들으려고 하겠느냐는 생각때문이였다. 그러나 막상 강연장에 도착해보니 뜻밖에 많은 교민들이 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무척 만나보고 싶어했고 경제 여건이 어려울 때 나를 통해 생활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고 싶어하는것 같았다.
나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한국은 짧은 시간 동안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나라로 주목받았습니다. 지금 세계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변화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걸음도 나갈수 없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화를 꾀하면 다시금 도약할수 있는 기회가 오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될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IMF 외환 위기를 극복해낼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내 말에 교민들의 얼굴은 다소 밝아지는듯 했다.
다음날 워싱턴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데 동문들이 나를 찾아와 이미 저녁 모임에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 놓았으니 갈수 없다는것이였다. 나는 그들의 진심어린 요청으로 하루 더 묵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