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하얼빈 역두에서 한국침략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총살ㆍ응징하였다."
안중근 의거 96주년을 앞둔 지난 2005년 학술대회에서 한국 근대사 전공인 윤병석 인하대 명예교수가 다소 흥분에 차서 했던 '선언'이다. 그의 의거는 그만큼 통쾌한 일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은 왜 이토를 총살ㆍ응징했을까?
안중근은 심문 과정에서 이토를 죽일 수밖에 없던 죄상으로 모두 15가지를 들었다.
그 첫번째와 두번째로 각각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를 거론한 것으로 보아 이 두 가지가 다른 무엇보다 안중근을 격분케 한 사건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명성황후 시해가 당시 조선인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안중근보다 4살 연상인 백범 김구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의 회고록인 백범일지를 보면 곳곳에서 자신이 항일투쟁에 나서게 된 계기 중 하나가 국모(國母), 즉 명성황후 시해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항일투쟁은 이에 대한 복수임을 주장하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안중근은 또한 이토가 정미7조약 등을 강제로 체결했으며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했고 정권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철도ㆍ광산과 산림ㆍ천택(川澤)을 강제로 탈취했고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도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군대를 해산한 죄,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한 죄, 교과서를 압수해 불태워버린 죄,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를 속인 죄, 한국과 일본 사이에 싸움이 그치지 않아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죄도 이토를 죽일 수밖에 없는 죄상 목록에 올렸다.
이런 죄상 목록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이의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안중근은 일본 천황, 즉 당시 메이지(明治) 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孝明) 천황을 이토가 죽였다는 사실도 거론했다. 물론 안중근이 거론한 이토의 죄상 중 사실과 명백히 다른 것도 있고 이토가 관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