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새중국 창립초기, 북경, 상해 같은 대도시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적지 않았으나 자전거와 인력거가 비교적 보편화된 교통도구였다. 중소도시에는 소량의 자전거와 인력거가 있었다. 농촌으로 보면 북방에는 마차, 인력 짐수레가 있었고 남방에는 배와 소수레가 주된 교통도구였다.
개혁개방전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은 색갈이 단조로운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볐다. 버스가 많지 않았고 또 너무 붐볐기때문이였다.
“30년전에는 거리에 차가 매우 적었습니다. 자전거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도구였지요. 버스는 그때까지는 아직 불편했습니다. 버스를 타려고 2~3 정거장씩 걸어가기도 했지요. 좀 먼곳에 가려고 하면 차를 두번, 세번씩 갈아타야 했습니다. 비행기는 물론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타볼수 있었지요.” 교통도구의 변화를 두고 올해 61세의 리운생로인은 감탄해마지 않았다.
전번세기 70년대 리운생로인이 갓 사업에 참가했을 때 제일 갖고싶었던 물건은 자전거였다. 그때 자전거를 사려면 표가 있어야 했는데 직장에서 그 표를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70년대 말 가장 좋은 자전거 브랜드는 영구, 봉황이였다. 그때 영구표 자전거 한대면 지금 사람들이 벤츠차를 소유하고 있는것처럼 면목이 서는 일이였다.
전번세기 80년대부터는 모터찌클이 새로운 교통도구로 되기 시작했다. 그때 모터찌클은 한 가정이 잘 산다는 상징이기도 했다. 모터찌클을 타고 다니면 사람들의 부러움의 눈길을 가득 받았다.
지금 교통도구는 종류가 많고도 많다. 거리에 나서서 손만 흔들면 택시를 잡아탈수 있다. 공공교통도구로서의 버스도 이전보다 훨씬 많아지고 편리해졌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그래도 자가용의 출현이라 해야겠다. 지금 자가용은 대단한 증가속도를 보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할빈시(호란구, 아성구 포함하지 않음)의 자가용 보유량은17만 1036대, 올해 상반년의 자가용 증가량이 거의 작년 1년의 증가량과 맞먹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