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진출해 아파트에서 사는가하면 시골에 있는 사람들도 벽돌집을 으리으리하게 짓고 집안 장식도 드르르하게 해 도시사람들 못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 나도 지난해 향촌에서 현성으로 이주해 훌륭한 상품아파트에서 살고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40여년전에 내가 살던 그 초라했던 오막살이가 꿈속에 그냥 찾아오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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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보류돼있는 녕안시 모촌의 초가집 /림영빈 기자 |
60년대 초반에 우리는 딴집 헛간을 50원에 사 살림집으로 하였는데 남향도 아닌 보잘것 없는 오막살이였다. 다 찌그러져 곱사등이 된 집은 몸체를 절반이나 땅속에 묻었는데 비틀린 창문은 제대로 닫기지 않아 비바람을 막지 못했다. 이영도 다 썩어 심봉사네 집처럼 '청천하늘 세우시에 우대량이 방중(青天細雨时,雨大量房中)' 이여서 온 집식구가 대야를 들고 헤덤벼야 했다. 장마철에는 마당보다 낮은 집안으로 흙탕물이 흘러들고 아궁에 물이 고여 불을 땔수 없는 형편이였다. 이렇게 하도 헐망하고 초라해 지나가던 거지들도 우리집엔 들지 않았다.
흙벽이 원체 부실부실해 쥐란 놈들이 벽속으로 사방 구멍을 뚫고 제 마음대로 다니며 어떤 곳에는 둥지까지 틀었다. 벽에 난 쥐구멍을 막느라고 돌을 주어다 밀어넣었지만 며칠후면 그 옆에 또 구멍을 뚫렀다. 이러다보니 벽이 무더기로 떨어져 내렸다. 하여 한해에도 두세번씩 벽에 흙매질을 해야 했다. 그리고 구들도 해마다 뜯어야 했고 이영도 양초나 벼짚으로 덮어야 했다.
그런데 한해는 세찬 회오리바람이 불어 지붕을 중머리로 만들었다. 급해맞은 나는 동분서주하며 동무들 한테서 벼짚을 얻어다 대충 올렸다. 가을이면 집안 벽을 신문지로 도배하고 문풍지를 했으며 겨울에는 출입문의 안에 거적을 엮어 달았다. 그리고 불을 아무리 때도 집안은 언제나 설렁해 창문에는 성에가 두텁게 얼어붙고 그릇의 물도 살얼음이 지곤 했다. 한밤중이 되면 식구들은 너무 추워 몸을 옹송그리고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군 했다.
이런 보잘것 없는 집을 지금 생각하면 몸서리 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때 화목하게 살았다. 그래서인지 오늘 대궐같은 집에서 근심 걱정이 없이 살지만 지금도 꿈속에 그 초라하던 오막살이가 띄염띄염 떠오르군 한다.
/리근(필자는 상지시 마연향의 퇴직 간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