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먹는것' 자체를 중시
현재 따뜻한 인정 더 중요해
(흑룡강신문=하얼빈) 설은 일년중 가장 중요한 명절이고 또한 가장 중요한 행사라고 하겠다. 물질이 극도로 풍부해진 오늘 설이라는 이 '행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설 먹거리의 변화는 60년 변천을 제일 잘 보여주는 하나의 횡단면이라 하겠다.
농촌:
먹거리 만들기가 고역이였던 50년대, 하지만 60년대에 비하면 그것은 즐거운 ‘비명’이였다.
“설이면 주부들이 정말 고생하였죠.” 할빈시에 사는 최룡철로인은 이같이 이야기의 허두를 뗐다.
50년대 초에는 물질이 풍부하지는 못했지만 배불리는 먹을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설은 온집 식구가 함께 ‘특별히 잘 먹어야 하는 명절’이였다.
“그때 주부들은 설이 되기 약 열흘전부터 먹거리 준비를 했습니다. 주로는 엿달이기, 두부 만들기, 떡방아 찧기, 떡 빚기이지요.”
엿을 달이려면 적어도 이틀밤은 밤을 새며 엿물을 끓여야 한다. 두부는 콩을 퍼지워 매돌에 갈아 그것을 다시 거제에 밭은후 끓여서 서슬을 치면 초두부가 된다. 초두부를 판에 짜면 두부가 되는것이다.
떡을 만들자면 우선 방아를 찧어야 했다. 두 사람이 디디고 한 사람은 전문 저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빻은 가루로 백설기, 증편, 입쌀만두를 빚었다.
“공공식당제를 실시하면서부터 개인집에서 설을 쇠는것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생활형편이 괜찮은 집에서는 설이면 가만가만 한족마을에 가 쌀을 꿔옵니다. 하지만 그것도 붙잡히면 큰일 납니다. 우선 꾼것부터 몰수당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