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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 1998년 혼례복 |
이로써 이 시기는 당시의 정치적 정세하에 모든 것이 홍위병과 군부를 둘러싼 정치적 색채와 련관이 있으며 복식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여 나타남을 볼 수 있다.
개혁개방을 실행하기 시작한 초기 10년동안 중국사회는 매우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이시기에는 농촌, 도시주민의 실질생활수준이 2배 이상으로 크게 향상되였다. 일부 지역, 계층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생활의 질을 추구하는 단계가 되였다. 이와 같은 경제와 기술의 발달은 기존의 복식에 변화를 요구하게 되였다. 소수민족 우대정책이 부활됨에 따라 조선전통에 대한 회복이 복구되여 다양한 년령층에서 한복을 착용하였다.
이시기 혼례복에는 너울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갖가지 꽃으로 장식된 너울은 흰색의 망사로 된것이 대부분이고 화사한 꽃을 너울에 달았으며 길이가 길어서 신부와 신랑의 발을 모두 가리게 되였다. 너울은 그다지 부풀리지는 않았으나 특이함을 추구하기 위해 너울을 머리뒤쪽으로 쓰고 앞이마에 구슬을 두리우기도 하였다.
혼례복에는 살색에 금박 꽃을 수놓거나 연한 핑크색이거나 등 연한 바탕에 연한 꽃무늬가 있는 색상을 착용하였다. 빨간색이나 노란색이나 등 특별히 눈에 띄는 색상은 피하였는데 특히 남색은 발음상 “남의 색”이라고 하여 기피하였다. 조선족들의 전통적인 첫날 신부에 대한 미적 기준으로부터 얌전함과 유순함을 나타낼 수 있는 연한 색상을 선호하였다.
남자들은 양복을 입기도하고(사진4) 중산복을 입기도 하였다. 소재는 모직이 많았다. 앞가슴에는 모주석 초상마크 대신 남녀 모두 가슴에 신랑, 신부라고 쓴 붉은 꽃을 달았으며 흰 장갑을 착용하였다.
1990년대는 더욱 심화되는 개방화 정책으로 전반 사회는 현저한 변화를 가져왔으며 경제는 전례없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다.
중국의 경제구조와 인민들의 생활은 20년에 걸친 개혁개방정책에 의하여 크게 변하였으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류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빠른 사회변동으로 이어졌고 전반사회의 도시화를 가속화하였다.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복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고 위세를 부리기 위해 가장 가시적인 상품인 복식을 통한 과시적 소비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런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확산되였다.
특히 1992년 중한수교는 흑룡강성 조선족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주었는바 가치판단 기준과 사고방식이 바뀌였고 행동양식도 크게 변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