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하얼빈일본총영사관에서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건에 대하여 유관인원을 심문 조사한 후 작성한 '조사기록'에는 여러 곳에 金成白의 이름을 金圣伯이라고 성인 성, 맏 백자를 썼거나 金成伯이라고 이룰 성, 맏 백자를 썼다. 중국의 여러가지 저작과 논문에서도 金成白, 金圣伯, 金成伯으로 세가지 서법이 나타난다. 한국어 음으로 김성백은 다 같으나 한자로서는 그 음향도 다르고 글자 뜻도 다르다. 때문에 이를 규범화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그럼 김성백의 이름은 한자로서 어느 글자를 쓰는 것이 마당하겠는가? 필자는 金成白이라고 성 김, 이룰 성, 흰 백으로 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얼빈 일본총영사관에서 1909년 11월8일 김성백을 심문하고 작성한 '김성백 공술 요지'란 문건에 "나는 金成白이라 하오. 하얼빈 한민회 회장으로 있소"라고 자기로서 자기 이름을 金成白이라고 하였다.
둘째, 여순감옥 법정에서 안중근에 대한 '심문조서'와 '공판시말서'는 법률문건으로 모두 金成白으로 씌어있다.
셋째, 해방후 안중근의사의 동료 우덕순이 서울에 돌아가 쓴 '우덕순선생의 회고담'에 "金成白은 하얼빈 한민회 회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조선의 완전독립을 위하여 싸우고 있는 지사입니다"라고 하였고 해방후 서울에 돌아간 안의사의 하얼빈의거 준비에 참여하였고 안의사 순국 후 그 뒷수습을 맡았던 대동공보사 주필 이강이 쓴 '내가 본 안중근의사'에도 "22일 오후 9시, 하얼빈에 도착하여 유동하의 매부 金成白 집에 유하면서"로 씌여있다. 이는 즉 김성백의 전우들도 金成白으로 쓰고있다.
넷째, 김성백 형제들의 이름을 보더라도 둘째 동생은 金成烨, 셋째 동생은 金成基로 모두 이룰 성자를 썼고 성인 성(圣)자를 쓰지 않았다. 이는 우리민족이 이름 짓는 습관과 맞먹는 것으로 金成白으로 쓰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