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 중국 장사 정원(郑沅)의 '안중근전'에는 "한국 자객의 한국어 이름을 러시아,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 하였기에 그 음역이 서로 같지 않아서 그 진실을 알 수 없었다. 그후 일본신문을 얻어 보았는데 그 자객을 안응칠이라 불렀다. 안중근이라고도 하는데 어릴 때 이름은 안다묵(安多默)이다"라고 하였다. 정육(程育)의 '안중근전'에는 "중근은 성이 안씨이고 아명 다목(多默) 또는 응칠(应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민우일보(民吁日报)'는 "한국의 자객 안응접(安应接)" 혹은 "자객은 이름을 음성안(阴成安)으로 자칭했다."라고 보도했다. '신주일보(神州日报)'에서는 "총을 쏘아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자객의 이름은 안음접(安荫接)"이고 "원명은 안응칠인데 안다묵으로 이름을 고쳤다"라고 하였다. "하문일보(厦门日报)'는 "일본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안응칠이란 자는 가명이고 그의 진실한 이름은 안중근이다"라고 보도하였다.
이와 같은 보도들은 정확하지 못하거나 잘못 된 보도들이다. 안중근의사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는 성은 안(安)이요, 이름은 중근(重根), 자는 응칠(应七), 성명(圣名)은 도마(道吗 혹은 多默으로 표음)라 하였다. 안중근의사는 대한국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서 태어났고 성질이 가볍고 급한 데에 가깝기 때문에 이름을 중근이라 하고 배와 가슴에 일곱개 검은 점이 있어 자를 응칠이라 하였으며 천주교에 입교하여 영세를 받고 성명을 도마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