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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개혁개방 30년> 개발 1번지 선전특구
중국 개혁.개방의 일번지 선전의 도심 선난다다오(深南大道) 변에 걸린 덩샤오핑(鄧小平)의 대
형 초상화 `당의 기본노선을 100년간 흔들림없이 견지하자'는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발언을 담
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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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어촌서 초현대 도시로 변모…한계 극복이 과제
(흑룡강신문=하얼빈) = 중국 개발의 1번지인 선전(深천<土+川>) 국제무역센터에는 덩궁팅(鄧公廳)이라는 칸막이 방이 있다.
1992년 1월20일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남순강화(南巡講話)'라 불리는 역사적 행사를 치른 곳이다.
개혁개방의 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8년만에 선전에 내려온 덩샤오핑은 3일마다 한층씩을 건립한 기록으로 '선전의 속도'를 상징하는 이 곳 국제무역센터 49층의 리볼빙 레스토랑에 들러 선전 시내를 내려다보며 감회에 젖는다.
광둥(廣東)성과 선전시 간부들에게 둘러싸인 덩샤오핑은 선전시 개발계획도 앞에서 개혁개방 노선의 가속화를 확인하며 당나라 시인 잠삼(岑參)의 시구를 인용, 동방풍래만안춘(東方風來滿眼春)을 읊었다.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로 불안에 떠는 외국인 투자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직 죽음으로 가는 길 뿐이다. 이런 기본노선은 흔들림없이 100년동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덩샤오핑의 강화 장면이 찍힌 대형 사진이 걸려있는 덩궁팅은 지금도 여전히 리볼빙 레스토랑의 VIP룸으로 관광객과 손님들을 맞고 있다.
안내원 구리메이(顧禮梅)는 5일 "덩샤오핑 동지가 이곳을 다녀간 후 선전의 발전이 훨씬 빨라지고 순조로워졌다"며 "현재 중국의 발전된 모습은 순전히 덩샤오핑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덩궁팅 외에도 선전 롄화산(蓮花山)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이나 선난다다오(深南大道)의 덩샤오핑 화상엔 지금도 개혁개방의 과거를 보러온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 개혁개방의 성지순례 코스에서 만난 중국인들에게선 덩샤오핑에 대한 존경과 감사함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난다.
선전은 그야말로 덩샤오핑의 도시다.
선전의 한자음을 한국인 대부분이 '심천'이라고 잘못 읽고 있을 정도로 선전은 30년 전만 해도 외국인들에겐 낯설고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깊을 심(深), 논두렁 수(土+川)가 뜻하듯 선전은 당시 바오안(寶安)현으로 논과 밭, 양식장, 오솔길, 낮은 가옥 등이 자리잡은 채 특구 설립 초기 객가인(客家人) 중심의 3만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선전 전체의 은행 예치금도 800만위안(10억원), 기업 매출도 2천만위안에 불과할 정도로 궁벽했다.
그러나 선전은 경제특구 1호로 지정된 이후 28년만에 1천만명의 인구에 고층건물로 가득 채워진 현대화 도시로 변모했다.
선전 원주민으로 현재 국유 투자기업 주임인 탕원뱌오(湯文彪.47)는 "특구 설립 전에는 광저우로 물건을 사러가야 할 정도로 선전은 가난한 곳이었다"며 "농부로 살아갈 작정이었는데 선전이 이런 대도시가 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1978년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에서 '사회주의를 핵심으로 하되 경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두 체제를 병행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덩샤오핑이 이어 1979년 광둥성 간부들에게 처음으로 경제특구 창설을 제안한 이후 선전은 1980년 8월26일 '광둥성 경제특별구역 조례'를 통해 경제특구 1호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실험장이 됐다.
지난 27년간 선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8%에 달한다.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폭발적 성장이었다.
2006년 선전 시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8천619달러로 전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가 된 것으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보답했다.
현재 선전은 1달러짜리 속옷에서부터 첨단 바이오 신약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국의 공장'이면서 상하이와 함께 증권거래소를 두고 있는 금융중심지이기도 하다.
외국은행 밀집도도 중국 내에서 가장 높아 은행 예치금만 1천억위안(12조5천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물동량이 매년 40%씩 늘어나 세계 4대 항만도시로 우뚝 섰다.
인도, 동남아, 중동에서 '선전의 기적'을 견학하러 오는 사람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선전은 특히 개혁개방이 중국이 강국(强國)으로 거듭날 수 있는 지름길임을 그대로 보여줬다. 선전의 개혁개방 실험은 이제는 동남 연해안으로 확대되고 내륙으로까지 전수되고 있다.
선전은 외자유치(引進來)와 해외진출(走出去)의 창구이자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시험대로서 모델의 역할을 했을뿐 아니라 인접한 홍콩의 번영과 안정, 대륙과의 융합을 이끄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성장세가 이처럼 폭발적이었던만큼 부작용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점은 선전으로선 고민되는 대목이다. 20년 후면 성장을 멈추고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선전에 이어 1990년대 중국 나머지 도시들이 개방됨으로써 그동안 홀로 누렸던 특수가 이제는 불투명해졌고 선전의 매력과 경쟁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인구 폭증에 토지는 부족하고, 에너지와 수자원 결핍도 심각하며 환경 수용도가 견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선전시측도 자인하고 있다.
특히 에너지 소모가 심하고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업종과 노동집약적 업종에서 벗어나 선전의 산업구조를 환경친화적 첨단업종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정책으로 값싼 인건비에 의존한 공장 유치도 이어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선전의 마지막 경제우대정책이었던 기업소득세 특혜조치를 폐지하는 새로운 세법이 통과된 점은 선전이 이제 더이상 외자유치에 의존한 경제성장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도 그럴 것이 선전시 1천953㎢의 전체 면적 가운데 가용 토지는 760㎢밖에 안되고 현재 남은 200㎢도 매년 10㎢씩 줄어드는 추세여서 이대로 간다면 20년 후에는 가용 토지가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
게다가 선전의 1인당 수자원은 광둥성 전체의 6분의1 밖에 안될 정도로 수자원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선전이 성장 일변도의 정책에서 벗어난 새로운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궈완다(郭萬達) 선전종합개발연구원 부원장은 "전력난을 비롯해 선전을 국제도시로 업그레이드하는데 부작용을 겪을 수도 있다"며 "선전은 토지나 교통 인프라, 변화를 위한 사회적 통제가 부재하기 때문에 심각한 과도기 현상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궈 부원장은 특히 선전시 간부들이 과거 개혁개방 정책의 낙후된 룰을 따르는데만 익숙하고 새로운 해결방법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중국 경제성장의 기관차였던 선전이 겪고 있는 최근의 모습은 앞으로 중국이 국가적으로 직면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중국 정부도 개혁개방 정책의 일신(一新)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