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부근에다 그런 협박문 벽보를 석장이나 붙인것은 경찰의 눈에 쉽게 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가. 그렇다면 놈은 경찰에 도전장을 보낸것이다. 그리고 대담하게 석장이나 붙여놓은것을 보면 녀자를 죽이겠다는 놈의 말이 결코 빈말은 아닌것 같다. 놈은 자신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똑같은 내용의 벽보를 석장이나 붙여놓은것이다.
세번째로 발견된 벽보는 앞서 수거된 두장과는 달리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뒤골목에 붙어있었다. 그 골목은 차 한대가 겨우 빠져나갈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로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S자로 휘여진 그 골목은 길이가 100m쯤 되였는데 한쪽 면은 주로 건물의 뒤쪽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다른쪽 면은 낡은 주택과 려인숙 건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쪽 면은 도시재개발지구로 묶여 빈집들이 대부분이였고 려인숙도 지금은 세집가운데 한곳에서만 손님을 받고 있었다. 골목이 지저분하고 으슥한데다 빈집들이 많아 지난 1년 사이에 우범지대로 락인 찍혀 있었다.
세번째 벽보는 그 골목의 목욕탕 건물 뒤쪽 벽에 붙어있었는데 순찰경관이 지나다가 발견하고 떼온것이였다. 그 경관은 파출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순경이였는데 그 벽보를 떼다가 소장에게 그것을 보여주었고 소장은 그것을 보고 코웃음치면서 그에게 그에게 도로 돌려주었다. 젊은 순경을 그것을 버릴가 하다가 혹시나 해서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본서에서 그것을 찾는 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자신의 행동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였던것이다.
“범인이 이 벽보를 붙이면서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겼을거 아니냐?”
“글쎄요.”
왕반장은 볼멘 소리로 대꾸했다.
“하다못해 발자국이라도 남겼을거 아니냐? 날아가서 그걸 붙이지 않은 이상…”
“눈에 찍힌 발자국은 구경군들이 짓이겨서 이미 없어졌을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담배꽁초 같은것도 없을가?”
“범인이 담배를 피운다면 혹시 현장에 떨어뜨렸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세심한 놈이라면 담배꽁초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을겁니다.”
“만일 꽁초를 버렸다면 타액이 마르기전에 빨리 수거해야 해.”
병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현장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모두 수거해오도록 해. 꽁초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떨어져 있는것이면 모두 주어오라구. 목욕탕쪽은 내가 가보겠어. 그 파출소 순경 이름이 뭐라고 했지?”
“서순경입니다.”
“지금 전화를 걸어 목용탕앞으로 나오라고 하지. 그 목욕탕 이름이 뭐라고 했지?”
“옥천탕입니다.”
병호는 옥천탕의 위치를 물어본 다음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만일 한달동안 쉬지 않고 눈이 내린다면 어떻게 될가. 사람들도 차량들도 발 묶여 한동안 갇혀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면 이 도시는 괴괴한 적막에 싸이겠지. 제발 한동안만 내려라.
전투복차림의 서순경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병호가 말을 걸자 차렷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음, 자네가 그 이상한 벽보를 떼였나?”
“네, 그렇습니다.”
20대의 초롱초롱한 눈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