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종 추리소설)
1. 녀자는 죽어야 한다
그는 건널목앞에 서서 충혈된 눈으로 차도를 메우고 있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들은 하나같이 눈을 허옇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밤새 내리기 시작한 눈은 아침 러시아워인 지금도 여전히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굵은 눈송이는 솜처럼 부드럽고 탐스러워 소담스러운 느낌마저 주고 있었다.
차들은 푸른 신호등이 켜졌는데도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였는데도 차들이 건널목안에까지 들어와 멈춰서 있자 사람들은 차들사이로 요리조리 몸을 피하며 건너가기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신호가 다시 바뀌자 차와 사람들이 뒤엉켜 러시아워의 혼잡스러움은 더욱 극심해지는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차 두대가 접촉사고를 일으켰는지 엇비슷하게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고 그 옆에는 남녀가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 바람에 차도를 메운 차량들의 행렬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었다.
“촌놈들 같으니.”
그는 중얼거리면서 차들사이를 빠져나갔다.
남자보다도 녀자쪽 목소리가 더욱 앙칼지고 기세등등한것 같았다.
“뭐가 어째! 야. 너 뭐하는 새끼야? 네가 뭔데 반말하는거야? 눈에 보이는게 없어?”
“어휴, 이걸 정말 남자같으면 콱 조져버리겠다만…”
“조져봐! 조져보라구! 조질줄이나 알아? 조질줄도 모르는게 입만 살아가지고 까부네. 제발 까불지 마. 알았어?”
회색 밍크의 녀인은 그랜저 3000cc안에서 휴도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초라한 점퍼차림의 30대 사내는 그녀를 아니꼬운듯 흘겨보다가 낡은 엑셀승요차의 찌그러진 뒤문을 당겨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열리지 않았다.
차도에서 차들끼리 조그만 접촉사고라도 일으키면 운전사들은 그 자리에 마냥 차를 세워둔채 큰 소리로 말다툼을 벌인다. 잘못한쪽은 잘못한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적반하장격으로 오히려 더 큰소리를 질러댄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자신한테 유리한쪽으로 일이 해결될것처럼. 그러는 동안 차는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교통은 마비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철면피들의 말싸움은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를 몰고가는 운전사들가운데서 이른바 신사숙녀란 찾아보기 힘들다. 양식이 있는 멋진 신사숙녀들이라면 이런 경우 이렇게 해야 한다. 먼저 교통에 방해가 되지 않게 차를 한쪽으로 세워놓고 웃으면서 명함장을 교환하고 경찰에 신고한 다음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사고처리를 부탁한다. 그리고나서 깨끗이 헤여지는것이다. 길 한가운데서 이 러시아워에 저게 무슨 꼴이야. 지저분한 년놈들 같으니.
그는 밍크코트의 녀인을 흘겨주고나서 보두우로 올라섰다.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1위. 그러니까 저들은 살인기계를 몰고 다니는 셈이다. 1년에 1만여명이 차에 치여 죽어가고 있다. 말이 1만명이지 그 시체를 한데 모아 늘어놓아봐라. 끔찍하고 어마어마할것이다.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간다면 아마 이 거리는 공포에 사로잡힐것이다.
선진국에 진입하고 있다고? 제발 웃기지 좀 말아라.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니까 금방 선진국 국민이라도 된듯 착각하고들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저들은 착각하고 있고 원숭이처럼 흉내를 내고 있을뿐이다.
살인기계를 몰고 다니는 야만인들은 다시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벌이고 잇었다. 저 계집애는 뭣하는 녀인인데 이 러시아워에 밍크코트차림으로 고급승용차를 몰고 나왔을가. 삿대질해대는 두 손끝이 매니큐어를 칠해 빨갛다. 부엌일을 하는 년 같지느느 않다. 자신의 배후가 든든하다는것을 은연중 과시하려고 애를 쓰고있다. 웃기는 년 같으니.
어느 건물의 벽앞에 사람들이 몰려 서있었다. 벽에 붙어있는 벽보같은것을 보고 있는것 같았다. 그앞을 지나치려다가 그는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 어깨너머로 벽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벽보 치고는 이상한 벽보였다. 사람을 죽이겠다는것을 알리는 기상천외의 벽보였다.
그는 웃음이 나오는것을 참으며 물고 있던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린 다음 그것을 구두끝으로 밟았다. 그러고나서 다시 벽보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