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창동지 간쑤지진재해구 기행
(흑룡강신문=하얼빈 2008-06-11) = 간쑤 전 성이 항진구재, 복구건설에 떨쳐나서고 있는 이 관건적 시각에 6월 6일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무원 부총리인 리커창(李克强)이 당중앙, 국무원을 대표해 원촨특대지진 중재해구인 간쑤 원현에 가 이재민들과 구재인원들을 위문하고 항진구재상황에 대해 현지 시찰했으며 복구 재건사업을 지도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 총서기와 원자바오 총리의 관련 지시 정신에 따라 당중앙, 국무원의 결책 포치를 단호히 관철해야 하며 한면으로 항진구재사업을 틀어쥐고 다른 한면으로 경제사회발전을 틀어쥐면서 항진구재와 경제사회발전의 이중적인 승리를 취득하기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쉬사오스(徐绍史) 국토자원부 부장 , 장웨이신(姜伟新) 주택및건설부 부장 , 유취안(尤权) 국무원 부비서장 , 류톄난(刘铁男) 국가발전및개혁위원회 부주임, 러우친졘(娄勤俭) 공업및정보화부 부부장 , 장사오춘(张少春)재정부 부부장, 닝졔(宁吉) 국무원 연구실 부주임 , 리번궁(李本公) 민정부 당조 성원 등이 함께 시찰했다.
리커창은 성위서기이며 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루하오(陆浩), 성위부서기이며 성장인 쉬서우성(徐守盛), 성위 상무위원이자 성군군 정위인 류쥐쿠이(刘巨魁), 성위상무위원이며 성위 비서장인 장신즈(姜信治) 등 성 지도자들의 수행하에 오전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산을 넘고 고개를 지나면서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미오(中庙)향, 비커우(碧口)진, 판바(范坝)향 등 중재해향 촌에 내려가 현지 재해상황을 고찰했으며 이재민들과 친절히 이야기를 나누고 기층간부들과 널리 교류하면서 재건사업에 대해 토의하고 다음단계의 사업에 대해 명확한 요구를 제기했다. 리커창은 간쑤성위, 성정부의 항진구재 행동이 신속했고 조치가 적절했으며 조직이 유력해 항진구재사업에서 성과를 이룩했다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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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며 국무원 부총리이고 국무원항진구재총지휘부 부총지휘인 리커창
(李克强)은 6월 5일부터 7일까지 간쑤(甘肃), 산시(陕西) 두 성의 지진 중재해구를 시찰하고 당중
앙, 국무원을 대표해 재해구 군중들과 구재인원들을 위문하고 군중들의 안치상황에 대해 현지
시찰했으며 복구건설사업을 지도했다. 6월 6일 리커창이 간쑤(甘肃)성 원文현 중미오(中庙)향 시
오자바(肖家坝)촌에서 재해상황을 요해하고 있다. /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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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원(文县)현은 간쑤성과 쓰촨 원촨사이 직선거리가 가장 가까운 현이고 원촨지진 중 간쑤성에서 재해가 가장 엄중한 현이며 전 현 특히 농촌의 대다수 가옥들이 지진 중 파괴되었다.
"이재민들의 생활 배치는 어떠한가", "항진구재사업의 진전상황은 어떠한가", "재해구에 어떠한 실지 곤난들이 있는가" ... 일련의 문제를 갖고 6월 6일 아침 일찍 리커창은 산시(陕西)성 닝창(宁强)현 옌즈볜(燕子砭)역에서 차를 갈아타고 원현 중미오(中庙)향 중핑(中坪)촌으로 직접 달려갔다.
가는 도중 도처에 산에서 굴러떨어진 돌들이 무더기로 길가에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고 어떤 구간은 길이 길게 갈라져 있었다. 루하오(陆浩) 리커창에게 룽난(陇南)시는 인원사상이 비교적 많을 뿐만 아니라 가옥이 대량 무너지고 기반시설이 엄중하게 파손되어 재해후의 재건임무가 아주 번중하다고 알려주었다. 리커창은 한면으로 재해상황을 요해하면서 한면으로 루하오, 쉬서우성과 재건 관련사항에 대해 연구하고 대처성 있는 조치와 방법을 제기했으며 현장에서 많은 구체적 문제를 해결했다.
중평촌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리커창은 모여온 촌민들에게 "원현은 이번 지진의 중재해구로서 당중앙, 국무원은 줄곧 원현에 관심을 돌리고 있으며 군중들의 생활을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커창은 한집한집 돌면서 "집이 몇채 무너졌는가? 부상당한 사람은 없는가? 일상생활은 확보되고 있는가? 탠트에 들었는가.... " 아주 상세하게 촌민들에게 이것 저것 물었다.
촌민 장졘쉰(张建勋)은 "원래 십여칸짜리 집이 있었는데 이번 지진 중 5칸이 무너지고 나머지도 사람이 살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부상당한 사람은 없다. 일가족이 탠트에 들었으며 일상생활은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새집을 지을 생각을 없는가?" 고 리커창은 물었다. 장졘쉰은 무너진 집을 다 깨끗이 정리한 후 다시 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새집 지을 돈은 있는가?"하는 물음에 장졘쉰은 집에 좀 있는 저금에다 나가서 일해 벌어 보태고 만약 정부에서 좀 더 도와준다면 새집을 꼭 지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여기까지 들은 리커창은 "국가에서 재해구의 매 가구에 보조해주는 동시에 은행대출을 제공해 주며 당중앙, 국무원과 각급 당위 정부는 당신들을 도와 이 난관을 꼭 이겨나갈 것이다"고 자신심을 북돋아 주었다.
무너진 집뜨락에서 몇몇 촌민이 폐허에서 벽돌을 골라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리커창은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벽돌 한장을 주어 옆에 있는 돌에 치자 벽돌이 몇쪼각으로 부서졌다. 리커창은 앞으로 집을 지을 때는 다시는 이러한 흙벽돌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룽난농촌의 대부분 민가는 모두 흙벽돌로 지었으며 더욱이 일부 산간지역의 민가는 지진 중 거의 파괴되었는데 이는 가옥의 품질과 밀접한 연계가 있다고 말했다.
리커창은 "재건시 현지 발전수준을 고려해야 할뿐만 아니라 가옥의 내진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농민들이 안전하게 마음놓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생방역인원들이 현장을 소독하는 것을 보고 리커창은 다가가 "매 촌마다 방역인원이 있는가?"고 물었다. "매 촌마다 소독인원이 두명 있으며 매일 모든 폐허에 대해 소독한다"고 방역인원은 대답했다.
리커창은 또 "현재 가장 부족한 약품은 무엇인가? 소독약품이 자라는가?"고 물었다.
"현재 소독약이 가장 부족하며 약 십여일분이 남아있다"고 방역인원이 대답했다.
리커창은 몸을 돌려 신변의 사업인원에게 꼭 방법을 대어 기타 지방에서 소독약을 가져다 간쑤재해구를 지원함으로써 전염병 발생이 없도록 확보하라고 부탁했다.
리커창은 재해구 학생들의 수업문제에 아주 관심을 돌렸다. 유치원 선생 천추이화(陈翠花)는 여진이 계속 발생하기에 학부모들이 마음을 놓히 못하고 있어 현재 소학교 저급학년과 촌 유치원은 아직 수업을 시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사상공작을 잘 해 다그쳐 그들의 심리적 부담을 해소함으로써 하루빨리 수업을 회복하고 재해구 어린이들의 학습에 큰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리커창은 강조했다.
중핑촌에서 떠날 무렵 리커창은 촌민들에게 "이번 지진으로 당신들은 고생이 많았다. 생활상 또 어떠한 곤난이 있는지 꼭 알리며 당위 정부는 꼭 천방백계로 방법을 대어 당신들의 곤난을 해결해 줄 것이다"고 거듭 말했다.
둘째,
부동한 촌에서도 재해상황은 같았다. 시오자바촌의 폐허 위에 서서 바라보면 곳곳마다 무너진 뜨락과 정리해 내놓은 잡물들이었다.
마을어구의 한 벽에는 재해후의 재건 기획도가 걸려있었다. 리커창은 다가가 기획도의 몇가지 가구모델을 가리키며 가옥구조, 기본건설비와 내진성능 등에 대해 일일이 물었다. 뒤이어 그는 관련인원을 시켜 그 기획도를 촌민안치점으로 가져오게 했다.
촌민 수자오구이(苏召贵) 가족의 탠트에서 리커창은 수자오구이한테 기획도를 가리키며 어느 가구 모델이 마음에 드는가고 물었다. 수자오구이는 80평방미터 가구 모델을 가리키며 "대다수 촌민들이 이 가구 모델을 비교적 마음에 들어 한다"고 말했다.
무엇 때문인가고 묻자 이 가구 모델은 면적이 작아 돈이 적게 든다고 수씨는 대답했다.
이러한 집을 짓는 데 대개 얼마 정도 돈이 드는가 하는 리커창의 물음에 수씨는 8만 위안 정도 든다고 대답했다.
"자기절로 얼마 정도 돈을 해결할 수 있는가?" "이 마을의 일반 가정에서는 자기절로 얼마 정도 해결할 수 있는가?"하는 물음에 수씨는 "자기절로 4~5만 위안 정도 해결할 수 있으며 이 마을 일반 가정에서는 1~2만 위안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집을 짓는데 평방미터당 800위안이 드는 것을 알게 된 리커창은 관련 지도자에게 재건기획은 꼭 농민들의 부담능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설계기준은 내진성이 있어야 하지만 건설비가 너무 높아서는 안되며 동시에 정부 보조와 각종 성금을 집중시키고 각 유형의 자금을 조절해 농민들이 하루속히 새집에서 들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는 또 현지에 일부 건축재료기업을 세우고 운반원가를 될수록 감소시킴으로써 농민들의 부담을 경감시킬 것을 건의했다.
루하오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해 성위, 성정부는 시멘트, 철근 등을 포함한 건축재료를 운수하도록 사회 역량을 동원시킬 것을 요구했다고 보충설명했다.
리커창은 이 조치에 대해 충분히 긍정해 주면서 재건기획을 단계를 나누어 실시하고 시기를 나누어 건설하며 농민들이 겨울을 날 집을 먼저 지으라고 요구했다.
벽돌 한장 가격으로 부터 재해구 군중들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탠트 내의 전기공급으로 부터 학교의 수업회복에 이르기까지, 구재인원들의 식숙으로 부터 방역인원들의 보조금 발급에 이르기까지 리커창은 아주 자세하게 묻고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일부 실지 곤난을 요해 했을 때 그는 가끔 루하오, 쉬서우성과 의견을 나누면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공동으로 연구했다.
리커창은 비커우진에 가 비커우수력발전소의 댐 안전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요해했다. 지진은 이 댐의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며 전문가의 감정을 거쳤다고 하자 리커창은 아주 기뻐했다. 그는 비커우댐은 상하유 광범위한 군중들의 생명재산안전과 직접 관계되므로 만무일실하도록 꼭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커창은 가는 곳마다에서 촌민들에게 "당신들은 이번 지진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현재 생활이 아주 곤난하지만 곤난은 잠시적인 것이므로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이 어려움을 꼭 이겨낼 수 있고 우리의 고향을 새로 건설할 수 있으며 새로 건설한 고향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고 격려해 주었다.
셋째,
점심식사후 리커창은 급히 또 판바(范坝)향 옌자(严家)촌으로 갔다.
27킬로미터 되는 노정을 한시간 반 걸었다. 가는 길에서 가끔 정부에서 발급한 라면, 음료수를 메고 가는 촌민들이 보이었다.
마을어구에 들어서자 폐허에서 몇몇 해방군 전사가 촌민들을 도와 탠트를 세우고 있었다. 리커창은 그들과 악수를 나누면서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나서 그들에게 배수구를 잘 수리함으로써 비물이 절대 탠트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라고 부탁했다.
리커창부총리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분분히 마을어구에 몰려들어 너도나도 앞다투어 당과 정부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리커창은 마을사람들과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가끔 허리를 굽히고 마을사람들에게 재해상황, 생계, 각항 구재조치 낙실상황에 대해 물었다.
판옌(范艳)이란 한 촌민은 현재 먹을것 마실것이 다 있는데 탠트가 너무 부족해 그들 집에서 13명이 한 탠트안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리커창은 "이 문제는 루하오동지가 나한테 이미 여러차례 들려주었는데 현재 탠트가 아주 긴장하며 전국 각지에서 모두 다그쳐 생산하고 있다. 쓰촨재해구의 많은 지방에서도 역시 12~13명이 한 탠트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꼭 방법을 대어 이 문제를 해결하겠으니 여러분 마음 놓으라"고 말했다. 뒤이어 열린 회보회의에서 리커창은 간쑤에 조달하는 탠트수를 13만개로부터 18만개로 증가시키고 새로 증가된 부분은 겨울도 날 수 있도록 솜탠트로 조달하라고 관련부문에 요구했다.
뒤이어 리커창은 판바(范坝)중학교에 갔다. 원촨대지진이 발생한 후 판바중학교의 젊은 교장 쉬웨이(许伟)와 부교장 궈환펑(郭焕鹏)은 학생들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후 일체를 불고하고 무너진 건물안에 들어가 학교의 고정전화를 꺼내왔다. 길이 중단되고 전기가 중단되고 대부분 통신이 중단된 상황에서 성위서기 루하오는 이 전화기를 이용해 원현 재해상황을 요해했다.
리커창은 쉬웨이의 손을 꼭 부여잡고 "5월 13일 루하오동지는 룽난에서 이 전화기로 간쑤의 재해상황을 회보했는 데 우리는 이 전화를 통해 첫시간에 원현의 재해상황이 아주 엄중하다는 알았기때문에 아주 빠른 시간내에 헬기를 파견해 간쑤재해구를 지원하게 되었다. 아주 감사하다!"고 말했다.
루하오는 그들은 아주 곤난한 상황에서 향간부들과 함께 자아구조를 벌이었는 데 그 정신은 아주 표창할만 하다고 말했다.
리커창은 "마땅히 그들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현재 학교는 수업을 회복했는가?"고 물었다. "해방군들이 탠트학교를 세워주었기에 현재 각 학년은 모두 수업을 회복했다"고 쉬웨이는 대답했다.
초중3학년이 수업하는 탠트교실에 들어가보니 질서가 아주 정연했다. 한룽이란 학생은 집이 학교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깊은 산속에 있었는 데 마을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집도 지진으로 전부 무너졌다.
"마을에는 몇가구가 살고 있는가? 무너진 가옥이 얼마나 되는가?" 리커창은 물었다.
"마을에는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데 가옥은 거의다 무너졌으며 모두들 탠트에 들어가 살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밥을 먹을 수 있는가?"
"향 간부들이 라면을 가져다 주고 부뚜막을 만들고 솥도 걸어주었으며 무너진 집에서 식량도 좀 꺼내왔다"고 한룽은 대답했다.
"평상시 집사람들과 어떻게 연락하는가?" 리커창은 물었다.
"전화로 연락한다" 판바향의 통신이 이미 전부 회복된 것을 알게 된 리커창은 아주 기뻐하면서 "지진 중 파손된 각 유형의 기반시설을 꼭 다그쳐 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나서 열심히 공부해 고중입학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따내라고 한룽을 격려해 주었다.
매 가는 곳마다에서 리커창은 학생들의 수업회복상황에 대해 알아보았다. 리커창은 "현재 부분 학교에서는 수업을 회복할 수 없는 데 한면으로는 저급학년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우려가 있기때문이고 다른 한면으로는 탠트가 부족하기 때문인 데 방법을 대어 탠트학교를 세워 어린이들의 학업이 지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넷째,
비커우진중심소학교에서 리커창은 광범위한 사생 및 모여온 군중들과 친절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학교의 재해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보았으며 학교판자집안에서 성위, 성정부의 사업회보를 들었다.
리커창은 간쑤성위, 성정부의 사업에 대해 충분히 긍정해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진 발생 후 간쑤성위, 성정부는 신속히 행동하고 긴급 동원해 일련의 유력한 조치를 취했다. 성위, 성정부 주요지도자들이 중재해구에 신속히 달려가 항진구재사업을 지도하고 인민해방군, 무장경찰 장병들을 조직 협조해 앞장에 세웠으며 재해구 각급 간부와 기층 광범위한 당원들도 앞장에 서 군중을 이끌면서 유력한 구원사업을 전개했다. 현재 재해구 민심이 안정되고 안회가 안정되었으며 간부군중들의 재건 신심이 아주 가득하고 재건사업이 질서있게 추진되고 있으며 간쑤의 항진구재사업이 중요한 단계성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말할만 한 것은 간쑤성은 피해가 비교적 엄중한 상황에서 쓰촨재해구에 사심없는 원조를 주었다. 이는 한곳에 곤난이 있을 때 모두가 지원하는 정신을 충분히 체현했다"고 리커창은 말했다.
리커창은 다음단계 사업에 대해 명확히 요구를 제기했다. 첫째, 재해구 군중들의 생활안치를 전력으로 잘 하고 세심한 조치와 착실한 작풍으로 군중들의 식사, 음용수, 의복, 임시거주 등 문제를 확보하고 둘째, 생산 회복과 재해후 재건사업을 돌출한 위치에 놓고 재건규획을 틀어쥐고 잘 하며 셋째, 재해의 재차 발생을 엄밀히 방비하고 대피방안을 잘 해야 한다. 넷째, 맞물림원조 관련조치를 낙실하고 각 방면의 적극성을 동원해 재건사업에 참여시키며 다섯째, 한면으로 항진구재를 틀어쥐고 다른 한면으로 경제사회발전을 틀어쥠으로써 항진구제와 경제사회발전의 쌍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간쑤인민은 아주 완강하고 소박하고 강인하다. 나는 간쑤인민들이 꼭 지진재해를 이겨내고 모든 곤난을 극복하면서 아름다운 고향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고 리커창은 말했다.
루하오는 후진타오총서기가 룽난 시찰시 한 중요 연설의 정신을 참답게 관찰 낙실하고 리커창부총리의 요구에 따라 광범위한 역량을 응집시켜 항진구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당중앙, 국무원과 재해구 인민들에게 만족스런 답복을 하겠다고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