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1909년 2월, 할빈에서 조선인 반일단체 '공립회'가 성립되였다. 이는 중국 동북지구에서 가장 일찍 건립된 반일군중조직이다. 이에 앞서 1906년 미국 샌프랜시스코에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직된 재미교포의 항일운동단체로 '공립협회'가 설립되였다. 이 협회는 '대한신보'를 발행하였으며 중앙총회밑에 샌프랜시스코와 하와이의 지부를 내왔다.
공립협회 중앙총회는 여러나라들에서의 독립운동을 널리 추진하기 위하여 조선인 리강을 러시아 불라디보스토크에 파견하였다. 리강은 그곳에 있는 유진률, 양성호, 차석포, 최봉준 등과 마음을 같이하여 노력한 결과 1908년 11월 불라디보스토크 공립협회를 설립하였고 기관지로서 '대동공보'를 창간하였으며 리강이 주필을 담임하였다. 이 공립협회의 사무소는 대동공보사에 두고 공립회 사무는 리강이 책임지였다.
1908년 10월, 김형재가 '대동공보'의 통신원의 명의로 , 11월에는 탁공규가 '대동공보' 모금인의 신분으로 리강의 파견을 받아 불라디보스토크로부터 할빈에 왔다. 그들이 할빈의 유지인사 김성백, 김성옥과 손을 잡고 몇달간 노력한 결과 1909년 2월에 조선인자치단체 명의로 반일조직인 할빈 '공립회'를 설립하였다.
할빈 '공립회'의 정관은 모두 29조로 되였다. 공립회를 설립하는 필요성에 대해 "우리 동포들은 조상의 무덤을 버리고 친척과 떨어져 만리 해외에서 기거하므로 외롭고 의지할곳 없어 산 사람은 길가에서 떠돌아다니고 죽은 사람은 도랑에 처버리니 짐승과 같은 인간이 됨이 소름이 끼치기에 이를 면하기 위하여 우리 동포의 조직을 내온다."라고 하였다. 의지할곳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서로 이웃과 동포들을 의지하여 살아갈수 밖에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자치단체 조직이 필요했던것이다.
정관은 공립회를 설립하는 목적에 대해서 "동포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환난을 당하였을때는 서로 구제하며 생업을 넓혀서 충실하게 하고 지식을 발달시키는데 그 목적을 둔다."고 명백히 지적하였다.
정관의 규정에 의하면 입회금은 매인당 30전이고 회비는 매달 10전으로 정하였다. 회원이 질병에 걸렸을때는 약값 1원을 주고, 회원이 사망하였을 때는 장례보조금 3원을 주었다. 회원으로서 생업이 없는자는 5원을 지불하여 리용토록 하고 생활에 여유가 있을때는 5원을 반환하기로 하였다. 회원으로서 술주정을 하거나 도박을 놀며 아편을 흡입하는 등 행위가 있을경우 1원이상 3원이하의 벌금을 한다고 규정지었다.
공립회에 참가한 회원은 모두 53명이였다. 회장에 강봉주, 부회장에 윤근성, 총무에 최상준, 서기에 김익지, 간사원에 김기상, 회계에 심기원이 추천되였다. 이들 회원은 대부분이 로동자였다. 이 공립회의 실권은 조직자였던 김성백, 김형재와 탁공규에 있었다고 한다.
공립회 설립후 초대회장인 강봉주는 자기가 한 사업에 대하여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매장하는 일, 환자가 생기면 의사를 찾아주는 일, 무직업자에게 직장을 알선해주는 일, 본국에 돌아가는 사람에게 려비를 보조해주는 일 등 네가지 일을 했다."고 하였다. 회원 박문순은 한달에 한번씩 집회를 가졌는데 "아편을 흡입하는것을 금지시키고 근면하게 일하도록 권고하고 음주를 금하도록 권고했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지나가는 손님에게 물을 한사발 떠주고 때가 되면 밥 한긋을 대접하여 보내는 미풍량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정이 있기에 서로 도우며 같이 살아갈수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공립회를 공제회로 보고있었다.
할빈공립회는 설립하여 1년 남짓한 동안 취지와 정관에 따라 할빈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묶어세워 자치단체인 '한민회'를 내왔고 조선인 교육기관인 '동흥학교'(할빈시도리구중심소학교 전신)도 일떠세웠다. 각종 활동을 통하여 회원들간에 서로 도와주는 공제정신과 자립정신을 키웠으며 신문발행을 통해 애국사상을 육성했다. 이런 조직과 기관이 나옴으로 하여 할빈 조선인사회가 형성되고 반일활동이 제 궤도에 올라섰다.
할빈공립회는 1910년 4월에 해산을 선포하고 '대한국민회 만주리아총회'로 넘어가 반일투쟁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사료에 의하면 할빈에는 1910년에 '대한기독교청년회','항일소년단 할빈지단' 등 반일단체들이 있었다. 반일단체의 설립은 우리 민족을 집결시켜 더 큰 힘으로 일제침략자와 싸워 국권을 되찾으려는데 그 의의가 있었던것이다.
/서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