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사 조카며느리 안로길할머니를 찾아
(흑룡강신문=하얼빈)="안씨가문의 일원으로 안중근의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혼신을 바친 장거에 무한한 긍지를 가진다."
안중근의사가 할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사한지 100주년, 할빈에 아직 안중근의사의 후손이 살고 있다는 안중근연구전문가인 서명훈선생(할빈시민족종교사무국 전임 부국장)의 소개를 듣고 본사 특별취재팀이 할빈시 남강구 안산가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을때 안중근의사의 조카며느리인 안로길(97세)할머니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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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롱속에 넣어두었던 안중근의사의 관련자료를 꺼내 이야기하고 있는 안로길 할머니. /림영빈기자 |
안로길 할머니는 아직도 혼자 방안을 걸어다니고 간단한 생활은 자립할수 있었지만 년세가 많으시고 고생을 많이 하신탓에 기억과 사유가 흐리해져 옛일을 띄엄띄엄 회고하다가도 한참 동안 한국말과 중국말을 섞어가며 뭔가를 중얼거렸고, 이 같은 행동이 몇 차례나 되풀이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할머니는 안중근의사의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이 올똘해졌고 또렷하고 분명한 어투로 답했다. 안중근 의사는 "셋째 할아버지의 아들"이라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로길할머니는 안중근의사의 사촌인 안홍근(洪根)의 막내아들 무생(武生)의 부인으로, 안 의사에게는 5촌 조카 며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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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의 사진을 내려 취재팀에게 보이고 있다. /림영빈기자 |
안로길할머니는 방에 걸려있는 안중근 의사 사진을 떼내 손으로 쓰다듬으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몰라" 하며 눈시울을 훔쳤고 장롱 속 깊이 놓아둔 안중근 의사 관련 자료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 동포를 수없이 죽였어. 당숙은 (안중근 의사는) 우리 동포를 살리려고 도둑질하러 온 그 흉적을 없앴어.” 할머니는 안 의사에 대해 "다재다능한 박사였다"는 말도 했다.
안로길 할머니는 고향인 조선 황해도에서 동북으로 이주, 17세 때 안중근의사의 조카인 안무생과 결혼했고 1945년 흑룡강성 수화시 해북진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았다. 남편과 비록 함께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남편이 살아생전일때 안중근의사와 안씨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때 남편을 기념하고 안씨가문의 후손임을 알리기 위해 원래 차(車)씨였던 성을 안씨로 바꿨다고 한다.
할빈에서 양로원을 운영하면서 안로길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최선옥(72세)씨는 “9년 전 할머니를 처음 만났는데 의지가지 할 곳이 없어 이곳저곳 전전하고 계셨다"면서 "그때는 치매가 심했고 몸도 약했는데 요즘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최씨는 안로길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돌볼 계획이라고 했다.
한때는 할빈역에 가 안중근 만세를 웨치기도 해 남들로 부터 정신이상자 취급도 받았다는 안로길 할머니에게서 안중근의사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들을수 없는것이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였지만 할머니의 표정에서 안씨가문의 후손된 긍지만은 력력하게 읽을수가 있었다.안중근의사 의거 백주년을 맞이하는 이시각, 안로길 할머니를 비롯한 안씨가문의 후손들이 무병장수하고 가문의 영광을 내내 기억하길 기원하며 특별취재팀 일행은 귀로에 올랐다.
/안중근 의거 백주년 기념행사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