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김호 김광석 기자 = ''우리집은 스키와 별다른 인연을 맺은 스키가족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하고 누나, 매부, 사촌형님 전부가 스키선수 출신입니다. 식구들은 스키화제가 없으면 대화가 안될 정도입니다.'' 이는 지난 20일 야부리스키장에서 펼쳐진 대동회 빙상종목인 스키점프(跳台)대회에서 박설봉감독이 기자와 나눈 얘기이다.
박설봉씨는 올해 33세로 전국 제8회, 제9회 동계운동대회 스키점프 최강자로 1999년 세계대학생운동회 제8위를 찍으며 처음으로 스키점프 월드컵 입장권에 든 선수이기도 하다. 2003년 퇴역후부터 중국국가팀 북유럽2종목의 총감독을 맡고 있었다.
박설봉감독은 어릴때부터 아버지 박동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박동석씨는 8세부터 스키훈련를 받으며 70년대 국내 알파인스키(高山滑雪)를 10여년간 '통치'한 명장이라고 한다. 박동석씨는 ''국내에서는 우승을 독차지하다싶이 했지만 국제무대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을 통해 이루고 싶어 눈의 봉우리에 우뚝 솟아라는 뜻에서 아들의 이름을 설봉이라고 짓고 어려서부터 스키에 관한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올해 62세인 박동석씨는 이번 대회 스키심판사업을 맡고 있으며 부인 장계지는 중국녀자팀 감독으로 나섰고 조카 박성룡도 스키점프 심판원으로 나섰으며 딸 박설리 및 사위는 예전에 알파인스키선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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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점프경기장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포즈를 취한 박설봉감독(우) /본사기자 |
이러한 스키가족에서 태여난 박설봉은 어려서부터 빙설운동에 흥취를 갖고 알파인스키, 노르딕스키훈련을 받다가 최종 더 자극적인 스키점프 운동을 선택했다. 1987년 우리나라에서 스키점프운동을 금방 도입할 당시 어머니가 설봉의 계몽감독으로 되였다. 어머니는 감독, 아들은 선수 이는 세계 빙설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다. 모자간의 특수한 관계였지만 그들의 간고한 훈련과 계획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춘하추동 엄한이 뼈속까지 스며드는 날에도 설봉은 기타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견지했고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90년대초, 국가중시를 받은 중국스키점프팀은 매년 일본에서 집중훈련을 받았다. 1998년 일본나가노동계올림픽에서 일본팀이 스키점프 개인과 단체 금메달을 따내자 ''아시아인이 금메달을 따낼수 있다면 중국인도 해낼수 있다. 일본인이 성사하는 일을 중국인도 꼭 성공시킬수 있다.!'' 고 신심을 굳게 가졌다.
15년간 박설봉은 28매의 금메달을 따내며 국가스키점프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 2003년 전국 제10회 동계운동회가 끝난뒤 어머니가 퇴직하면서 설봉이도 은퇴하고 어머니가 담임했던 감독사업을 맡았다. 국내빙설기가 짧아 설봉은 대원들을 이끌고 일본에서 훈련을 시작하고 퇴직한 장계지감독은 자비로 일본에 가서 대원들을 돌봐주었다. 장계지감독은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손수 영양밥을 지어 공급하고 설봉이는 큰 형님처럼 대원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배려했다.
모자간에 함께 노력한 결과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련속 4기 전국동계운동회 금메달을 전부 도맡고 그들이 양성한 4명 선수가 오스트리아에서 5년간의 훈련과 경기를 거치후 2006년 제21회 이탈리아 토리노동계올림픽에 처음 중국을 대표하여 스키점프경기에 참가했다. 따라서 중국스키점프가 동계올림픽에 없었던 력사를 종말지었다.
박설봉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2010년 캐나다 벤쿠버동계올림픽 참가자격을 따내는것을 목표로 훈련과 경험축적이 중요하다면서 중국팀이 아직 갈길은 멀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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