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8-12-27)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이영한 씨는 여기 대림동에서도 재한 중국동포들의 고초를 헤아려 주기 위해 열심히 뛰는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지난 달 서울 대림동에서 만난 한 식당업주의 얘기이다.
제2회 한중일문화예술 대상, 제1회 아시아태평양문화예술 대상까지 받은 이영한 씨(1953년 생)는 한중교류협회 관리이사 및 재한동포연예단 단장 그리고 한중동포신문 편집국장을 맡고 있으면서 재한 중국동포들 속에서 늘 분주히 움직이는 흑룡강의 중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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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이영한 씨. |
그는 중국에 있을 때부터 예술에 남다른 심취가 있는 사나이였다. 일찍 13살 때에 예술의 꿈을 키우려고 부모 몰래 입쌀을 팔아 연변가무단을 찾아갔다가 부모에게 들켜서 혼났다는 일, 바이올린에 또 심취가 생겨 말초리를 뽑으려고 하다가 말발굽에 채여 혼났다는 일, 그에게는 여러 가지 꿈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다.
이영한 씨의 이런 남다른 재주를 발견한 외삼촌이 각종 악기 연주를 가르쳐 주면서 음악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단다. 외삼촌의 가르침으로 이영한 씨는 피리, 하모니카, 퉁소, 북 등 연주법도 어린시절에 익혀 늘 동네잔치 등 행사에 초청되어 뛰어난 장기로 인근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단다. 참으로 다재다능한 예술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또 취미가 많은 사나이였다. 일찍 1990년에 중국에서 지리경관트럼프를 만들어내 국가전매특허까지 받았다는 이영한 씨는 "대학교 공부를 마쳤지만 문화대혁명기간이라 좋은 예술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고 했다.그러나 그가 중국에서 갈고닦은 예술의 재능이 오늘 재한 중국동포를 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일찍 1989년도부터 서울을 오가면서 1999년도부터는 완전히 서울을 거점으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영한 씨는 선후로 서울장충체육관에서 있은 '한중문화의 밤'에서 연출을, 안산체육관에서 있은 '추석맞이 스포츠, 문화축제'를 기획하고 감독으로 나섰으며 또 '장춘지구 해외 국악단 공연'을 기획하고 단장으로 활약했고 수차례 'KBS추석맞이 중국동포노래자랑'을 기획하고 감독하는 등 수많은 사업들을 펼쳐나갔다.
178㎝의 장신에 체중도 85㎏이나 되는 이영한 씨는 아주 유머적이고 익살스러운 사람으로서 평소에도 항상 재한 중국동포들을 만나면 익살스럽게 한담을 나누면서 상대방의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 주는 한편 그들의 고초를 헤아려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재한 중국동포들이 법률상식 서투름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고 또 많은 동포들에게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국내외 체류외국인 정보와 출입국관리법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지금 이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제 한국에 오는 중국동포들이 우선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고 더욱이는 현지에서 한국에 수요되는 기술을 장악하고 들어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영한 씨는 설명하고 있다.
지금 이영한 씨는 한중교류협회와 더불어 재한동포사회의 업무 수요에 발맞춰 동포사회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번역, 각종서류대행 및 초청서류, 유학, 국제결혼 관련상담 등 업무도 진행하고 있으며 무료법률상담, 재한 중국동포인권 신장과 권익보호에 일조하고 있다.
한편 그는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시간적인 여가가 있으면 늘 집 근처 공원에 가서 재한중국동포들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그들과 여가시간을 함께하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