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13)
——— 아성구조선족소학교 리신옥교원에 대한 이야기
할빈시 아성구조선족소학교 리신옥교원은 교육사업에 몸담근 10여년래 모든 사랑을 학생들한테 고스란히 바치며 성스러운 교단에서 인생을 보람차게 엮어가고있다.
'인류 령혼의 공정사'로 되는것은 그의 리상이였다. 어렸을 때 자기가 숭배하는 모친이 학생, 학부모, 동료들로부터 존경받는것을 보고 장래 자기도 모친과같은 사람이 되리라 맘 먹었던 그는 대학입시 때 서슴없이 사범학교를 선택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3년간 학업을 끝마치고 1992년 흑룡강성조선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았다.
그가 1학년 담임을 맡고 교단에 나선 첫날이였다.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자식을 학교에 대려다주러 와서 오래도록 창문곁을 떠나지 않았다. 어린것을 두고 가는것이 맘놓이지 않아서였다. 이 일을 통해 그는 교원으로서 학생들한테 열심히 지식을 가르치는것도 중요하지만 학부모들의 심려를 덜어주는것도 홀시할수 없는 문제라는것을 절감하고 학부모들이 맘놓게 하기 위해 매 학생을 친자식처럼 살뜰히 보살피기에 최선을 다 했다.화장실가는 일, 식사하는 일, 옷매무시를 바로 잡아주는 일... ... 그는 휴식시간이 따로없이 어느 한 학생이 빠질세라 지성으로 돌봤다. 마침내 그의 심혈은 헛되지 않아 학부모들이 더는 자식을 학교에 보내놓고 맘을 조이는 일이 없게 되였으며 어린 학생들도 부모곁을 떠난 불편을 모르고 공부에 열중하게 되였다.
최근년간 조선족농촌을 휩쓴 국내외진출붐바람에 학부모들이 집을 떠나가고 촌학교가 새내로 통합되면서 친척집에 얹혀 공부하는 학생들이 날로 늘어났다. 이런 학생들가운데 부모 사랑을 잃고 생활이 라태하고 성격이 괴벽하고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규률이 란잡한 현상이 부지기수였다. 더욱이 부모들이 리혼한 가정의 학생들은 거의다가 성격이 우울하고 진취심이 부족하고 어딘가 모르게 변태적이였다. 그가 맡은 학급에도 이 부류의 학생이 절반이상 차지했다. (사랑없는 교육은 성공할수 없다.) 그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학부모를 대신하여 편부모가정 학생들의 정감세계로 파고들어갔다.
그의 반급에는 부친을 잃고 장기환자인 모친, 학교 다니는 두 언니와 함께 생활하는 한 녀학생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빠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데다 변변치 못한 가정생활로 하여 이 녀학생은 늘 자비심에 젖어 활기를 띠지 못하고 공부에 게을렀다. 그는 지극한 동정심을 안고 개별담화를 통해 그 녀학생의 심리압력을 해소시켜주는 밖에 그 학생이 과외독서를 즐긴다는것을 료해하고 서적을 구해다주고 악렬한 생활환경속에서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여 성공한 동서고금 명인들의 이야기도 들려주며 실망으로 얼어붙었던 그 녀학생의 어린 가슴을 녹여주었다. 그의 진정어린 사랑과 관심속에 그 녀학생은 마침내 심리균형을 찾고 자비감에서 벗어나고 성격도 활발해지고 학습성적도 눈띄게 제고되였다.
그의 반급에는 부모가 리혼하고 둘다 출국해 년로한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는 학생이 있었는데 특수한 가정생활환경으로 인해 이 학생의 성격은 유별스레 괴벽했다.그는 인내성을 가지고 이 학생에게 각별한 사랑을 쏟아부었다. 그는 그 학생을 자기집에 데려다 목욕을 시켜주고 이쁜 리봉도 사서 메여주며 따뜻한 가정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의 부모들과 련락을 취해 자식을 물질상에서만 만족시켜주지 말고 정신적으로 많이 관심해줄것을 부탁했다. 그의 끈질긴 노력으로 원래 자기 자식에게 관심이 적었던 그 학생의 부모들은 드디여 자식과 밀접한 관계를 수립하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와 생활형편과 학습정황을 료해하며 부모의 직책을 다했다. 부모들의 관심과 선생님의 도움밑에 그 학생도 차츰 성격이 너그러워지고 학습성적도 제고되여 마침내 일년후에는 일약 후진생으로부터 학년의 우등생으로 전변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라는 다른 한 남학생은 늘 동학들과 싸울뿐만아니라 때로 사회 솔쏠이들과 휩쓸려 술을 먹고 싸움질까지 사슴없이 저질렀다. 그는 이 학생이 이렇게 제멋대로 놀아대는것은 부모의 리혼으로 빚어진 변태적인 행위라는것을 료해하고 자주 시간을 짜내여 그 학생을 찾아가 속심을 나누며 심리질병을 치료해주는 밖에 그 학생한테 먹고싶어하는 음식을 해주고 갖고싶어하는 물건을 사주며 부모애를 베풀어주었다. 그의 진정어린 관심에 감동된 그 남학생은 마침내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학습에 흥취를 붙이고 옳바른 길로 돌아섰다.
그는 사업이라면 모든것을 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7년전 그가 임신한지 3개월 되던 어느날 의사로부터 몸이 허약하니 한동안 휴식하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그 당시 그는 졸업반을 맡고있서 휴식할 형편이 못되였다. 하여 그는 남편을 설복하고 보태약을 써가면서 계속 출근을 견지했다. 그런데 설마했던 불행이 정말로 들이닥칠줄이야. 그번 학기 승벽심이 강한그는 악으로 사업을 견지하여 우수반급 영예칭호를 따냈지만 너무 지친탓으로 만삭된 태아가 그만 류산하고말았다. 당시 그는 자신한테 들이닥친 정신타격도 타격이려니와 남편과 시부모들한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진것만 같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후회와 고민끝에 모든것을 버리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혼자 숨어살려고 모진 맘까지 먹었다.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반급 학생들이 집까지 찾아와 "선생님, 너무 슬퍼마세요. 선생님한테 우리 40여명 자식이 있잖아요. 선생님, 우릴 버리지 말아주세요."하고 흐느껴 울면서 애원하는것이였다. 눈물 번벅이된 어린애들의 두눈에서 비쳐나오는 간절한 기대를 읽는 순간 그는 일시적이나마 그토록 충성해온 직업을 버리려고 옥생각했던 자신이 옹졸스럽고 부끄럽기만 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또다시 결연히 성스러운 교단에 올라섰다.
최근년간 학생래원이 위축되고 교원들이 교정을 떠나는 현상이 날로 우심해지는 현실속에서 그도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한두번만 검토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차마 자기의 리익을 위해 그토록 지식을 열망하는 어린 학생들을 몰라라 하고 정든 교단을 훌쩍 떠나가버릴수 없다는것이 그의 사회적 량심이고 굳센 다짐이다. 바로 이런 각오를 한 그였기에 그는 몇년래 줄곧 자신의 사업터에서 만강의 열정과 드높은 책임감으로 맡은바 임무를 넘쳐 완수하고 조직과 령도의 인정을 받고 동료들과 학생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10여년래 그는 신근한 노력으로 풍성항 열매를 바꿔왔는바 여러차례 '아성시우수교원', '할빈시우수교원', '할빈시우수담임교원', ' 할빈시골간교원', '할빈시 후진생전환 선진개인' 등 뭇 영예를 따냈다.
'나는 일개 평범한 교원으로서 하늘땅을 뒤흔드는 장한 일을 한것도 없고 세인을 놀래우는 기적을 쌓은적도 없다. 단지 내가 갖고있는 지식과 사랑을 지식과 사랑을 갈망하는 후대들에게 아낌없이 주었을뿐이다. 나는 이속에서 더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이것은 리순옥교원의 구김없는 일기 한단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