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13)
——— (연길) 한미화
소슬한 가을바람도 인젠 점점 사그라지고 그대신 겨울바람이 코끝을 맵싸게 스치고 지나는 겨울이다. 온 한해동안 인내하고있던 외로움들이 겨울에 와서 더욱 진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때라 매일같이 쓸쓸한 기분에 가슴이 아려온다.
며칠전에 싸이에서 파도타기를 하다가 우연히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한 녀자의 싸이에 들어가보게 되였다. 기본자료를 보니 나와 나이가 동갑인데 벌써 결혼을 한것 같았다. 앨범을 클릭해보니 거의 전부가 결혼식날에 찍은 사진이였다.
아직 제대로 된 련애 한번 변변치 못해본 나인지라 결혼은 항상 거리가 먼 인생의 과제라고 생각해왔다. 다혈질 성미다보니 결혼이란 그 “금지된 자유”를 생각한다는것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나한테는 자학이나 다름없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니터속의 애된 신부의 얼굴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수가 없었다.
누군가 녀자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바로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백년가약을 맺는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하나도 그른데가 없는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터질것만 같은 이슬 머금은 복사꽃같은 신부의 얼굴, 싱글벙글 웃음을 감출줄 모르는 신랑의 휘동을 받으며 사부작사부작 걸음을 바장이는 모습들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둔채로 세상에 또 하나의 아름다운 커플의 탄생을 예고한것이다.
순간 새삼스럽게 “결혼”이란 낱말을 류추해보았다. 신부의 웃음을 보는 순간 그 모습은 어느덧 내 눈속에서 그대로 한 녀자의 얼굴로 클로즈업되여 눈앞에서 알른거린다.
(그녀도 얼마전에 이렇게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수많은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을 했겠구나!) 나와 동갑인 그녀를 알게 된것은 참 우연한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코 우연한것도 아니였다. 아마 우리는 뭔가 보이지 않은 끈끈한 인연의 줄을 타고 서로 존재를 모르고 살다가 온 사람들 같았다. 그 낯설음이 어느날 만남이란 이 고리를 통해서 더욱 하나로 이어졌는지 모른다.
나와 동갑이고 애된 얼굴에 항상 웃을 때면 반짝이던 보조개를 가진 그녀는 내가 아주 존경하던 선생님의 아끼던 문학도였다. 때론 칼날같은 예리한 사유를 하다가도 고요한 물처럼 은은한 감성의 향을 풍기는 그녀의 글을 보고는 도무지 지금의 애된 얼굴과 소박한 웃음을 떠올리기가 여려울 정도였다.
그녀의 글들에서는 때론 성숙된 녀인의 아픔도 엿볼수 있고 기고만장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헤매는 반항아의 곤혹을 담은것도 있으며 얼음처럼 차가운 리성으로 우리 생활 구석구석을 사시(斜视)하는 끼를 자랑하는것도 있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포섭하는 관용도 스며있군 했다.
때문에 어지간한 문학도한테는 “잘한다”는 칭찬을 하지 않는 그 선생님도 그녀의 순발력과 끼를 높이 칭찬해주면서 문단의 새로운 혜성이라고 하면서 늘 아껴주셨다. 그녀를 알기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나한테 하나의 전설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녀에 대해 은근히 시샘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글들을 보면서 저도 몰래 감탄을 해본적이 한두번이 아닌지라 우리의 만남을 두고 잔뜩 긴장해있었던것이다.
한여름의 열기를 다 몰아내는 밤시장은 우리들에게 좋은 피서장이자 거침없이 토크를 나누는 하나의 작은 문화살롱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약속된 장소로 나가보니 내 예상과는 달리 작달만한 키에 가냘프게 마른 체질의 녀자애가 그 선생님이랑 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느다란 실눈은 웃으면 살짝 패이는 볼우물과 어우러져 더없이 귀여보였다. 살짝 웨이브를 얹혀준 파마머리에 굽높은 하이힐을 신어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릴 때 묻어나는 순수함은 마치 동년시절에 이웃집에서 살던 짜개바지 친구처럼 친근하고 소박하였다. 주정뱅이들의 떠들썩한 소리, 부지직부지직 고기타는 냄새, 침방울 튕기며 손님을 잡는 장사군들과는 너무 대조되는 하나의 실루엣이였다. 마치 교향악 지휘가처럼 손을 흔들며 문학이며 영화에 대해 달변을 토하던 그녀는 정말 나의 상상속의 이미지랑 전혀 달랐다.
수줍게 낯을 붉히다가도 개구장이 아이처럼 막 손으로 튀긴 누에고치를 집어먹는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과연 이런 걷잡을수 없는 끼가 그녀에게 글을 쓸수 있는 저력을 만들어 주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면서말이다. 선생님의 기대에 찬 눈길에서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읽어볼수가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녀류작가의 탄생”이라던 선생님의 예언을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첫만남을 마치고 한동안 자기 일상에 쫓기다보니 서로 련락이 뜸해졌다. 내가 다시 그녀를 떠올리게 된것은 어느날 뜻하지 않았던 그녀의 결혼소식을 들은 후였다. 전화속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결혼한다고 말하던 그녀, 그때 나는 다시 한번 추억속의 그 실루엣을 떠올려보았다. 이발 시린 생맥주를 원샷하면서 손가락으로 튀긴 누에고치를 주어먹던 그 이웃집 녀자애의 실루엣을……
갑자기 주먹밥을 그대로 삼킨것처럼 가슴이 답답해났다. 거창하게 열변을 토하면서 철저한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하던 그녀의 꿈과 그녀의 결혼은 너무나도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녀의 그런 날개짓을 열심히 응원하던 선생님의 기대와 그런 그녀를 부럽게 지켜보던 많은 문학도들의 예상을 깨고 그녀는 그렇게 결혼을 하였다. 마치 어느 드라마의 반전처럼 그녀의 결혼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만남에서 결혼까지 우연과 운명사이를 넘나들며 네번째 만남에 결혼에 올인했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던 그녀의 도도함과 당돌함 역시 기대이상이였다.
어느 철학가가 말했듯이 “결혼은 령혼의 무덤이다”란 론조에 랭소를 던지는듯 그녀의 그런 결혼을 보면서, 그럼에도 순수하고 행복한 미소는 나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비구니가 되겠다”고 서글프게 말하던 그녀, 혹시 가슴속의 누군가에게 고백못할 아픔과 상처의 편린들을 오늘 결혼이라는 이 주술같은 낱말을 통해 무마시키려고 할까 하는 의혹도 없지 않았다. 아니, 또 그녀는 새로운 사랑이란 이름으로 다시 우리곁에 날아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살아오면서 일상에 많은 생각지 못한 우연과 기적과 그리고 반대로 어이없는 해프닝들이 많다는것을 느꼈다. 나를 울게 하고 웃게 했던 모든 사실들, 시간이 흐르면 모든것들이 리해되고 그 나름대로의 리유를 류추해보는 그런 지혜를 배워가는지 모른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그녀의 결혼도, 오늘 모니터속의 이름모를 신부의 눈부신 미소를 보며 자연스레 그녀를 떠올리게 된 사실도, 결혼에 대해 전혀 우습게 여긴다고 자처하면서도 부러운 감정을 감출수 없는 지금 이 시각 나의 부끄러운 “속물성”도…
행복을 누릴수 있는 선택받은 자들에게 누가 코웃음을 칠수는 없는것이다. 다만 우리한테는 축복해줄수 있는 일만 남아있을뿐이다. 결혼이란 존재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않으면 모든것이 그렇게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아마 늘 평범을 거부해오던 그녀가 또다른 이미지로 우리한테 신선하게 다가올지도 오른다.
그녀의 결혼식에 뒤늦게나마 “행복해라”는 축복과 더불어 “더 열심히 해라”는 바램을 메모해두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