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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발자취(64)-남창봉기에 참가한 조선혁명가들
http://hljxinwen.dbw.cn   2008-12-03 15:58:26
 
 
 
 
 
(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12)

   

   

  1927년 8월 1일 새벽 중외를 진감한 남창봉기가 시작되였다. 3만여명에 달하는 혁명군인들이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국민당반동파를 반대하는 총성을 울렸다. 200여명 조선 열혈청년들도 이 위대한 전투에 참가해 피흘려 싸웠다.

  장강로(章江路)입구에 위치한 적 주배덕의 제5로군 총지휘부를 공격하는 임무는 하룡부대가 맡았다. 적의 총지휘부는 경비퇀이 수비하고있었다. 사전에 변절자의 밀고를 받은 적들은 지휘부로 통하는 길목에 수비진을 쳐놓았다.

  공격부대가 돌진해왔을 때 적들은 고루에 의지하여 완강히 사수하였다. 하룡과 류백승은 적과 정면으로 대적하는 한편 일부 부대를 나누어 주변의 높은 성루에 올라가 우로부터 고루의 적들을 제압하게 하였다. 조선혁명가 강석필, 김래준, 홍범기 등이 공격부대에 가담하였다. 그들은 사다리를 놓고 비발치는 적탄을 무릅쓰고 12미터나 되는 성루로 올라갔다. 그들은 화력으로 적의 기세를 누르고 부대의 공격을 엄호하였다. 봉기군 전사들이 사면에서 적 총지휘부를 포위하고 우로부터 집중사격을 가하자 적들은 독안에 든 쥐 신세로 되였다. 3시간 남짓이 저항하던 적들은 드디여 투항하였고 주배덕은 도주해버렸다.

  하룡부대의 조선전사 강석필, 김래준, 홍범기 등이 두려움없이싸워 점령했던적 총지휘부는 남창시 장강로 67번지에 위치해있었다.지금 그곳은 강서성 가무극원(歌舞剧院) 종업원사택으로 되였다.

  장강로를 따라 다른 한 전적지 송백항으로 가보았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한참 찾아보니 첨탑이 높게 솟은 천주교회당건물이 나타났다.교회당이여서 그런지 주소로 될만한 번지수가 명확히 밝혀있지 않았는데 주변 가옥의 번지수를 보아 송백항 01―11번으로 추측되였다. 남창봉기에서 가장 치렬했던 전투가 바로 이 교회당주변에서벌어졌던것이다. 지금 보이는 이 교회당은 옛 건물을 보수한것이였다. 조선투사 방월성이 용감히 싸웠던 송백항전적지에는 그래도 교회당이라는 표적이 남아있어 다행이였다.

  봉기군이 적 총지휘부를 공략하자 적들은 혼란에 빠졌다.

  엽정부대는 두 길로 나뉘여 송백항부근의 적과 공원의 적을 공격하였다. 송백항부근의 전투는 매우 치렬하게 벌어졌다. 공격임무를 맡은 엽정부대 71퇀 전사들은 탄우를 무릅쓰고 돌진하였다. 제6군 57퇀의 적들은 천주교회당에 화력거점을 만들고 완강히 사수하였다. 적들은 중형무기를 집중시켜 봉기군의 공격선로를 차단하였다. 비발치는 적탄으로 하여 봉기군 전사들은 머리를 쳐들수 없었다. 후속부대가 당도하여 천주교회당을 포위했지만 적의 화력이 막강하여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었다. 계속 대치하고만 있을수 없었다. 이때 봉기군 전사들은 결사대를 조직하기로 하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 전사들이 나섰다. 조선투사 방월성도 가슴을 치며 앞으로 나섰다. 결사대는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계속 돌진하는 희생정신으로 전진하였다. 봉기군 결사대가 혈로를 뚫고 전진하자 기타 전사들도 공격나팔소리와 함께 돌진하였다. 더는 지탱할수 없게 된 적들은 황급히 총을 놓고 투항하였다. 그리하여 송백항 천주교회당 공격전도 봉기군의 승리로 끝났다.

  엽정부대의 72퇀은 공원(贡院)부근에서 적들과 접전하였다. .

  엽정부대의 조선투사 박인, 김철강 등이 봉기군과 함께 이곳에서 싸웠다. 이들은 공원에 주둔하고있던 적 23퇀과 24퇀을 공격하였다. 적들은 급급히 응전했지만 이미 선수를 놓친 뒤라 봉기군에게 밀리기 시작하였다. 봉기군의 급습에 많은 적들이 소멸되거나 투항하였고 24퇀의 남은 적들은 북쪽 호수가로 도주하였다. 이때 앞에서 봉기군과 농민군이 나타나 적들을 저격하였다. 앞뒤로 공격을 받은 적들은 화력이 비교적 약한 72퇀 지휘부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지휘부에 있던 수십명 학생군인들도 두려움 없이 싸워 적의 항복을 받아냈다.

  동녘하늘이 밝아올무렵 남창시의 총성은 뜸해지기 시작하였다. 4시간 남짓한 격전을 거쳐 봉기군은 1만여명의 적들을 소멸하고 남창성을 통제하였다. 국민당을 반대하는 중국공산당의 첫 무장투쟁은 승리적으로 끝났다.

  남창봉기후 봉기군은 원래의 계획대로 남창에서 철수하여 광동으로 진격하였다. 봉기군 전적위원회는 광동에서 혁명근거지를 창설한후 다시 북벌하기로 결정했던것이다. 그러나 명확하고 구체적인 작전로선과 계획이 없었기때문에 봉기군은 수배에 달하는 적의 추격과 포위, 공격을 받아 막대한 희생을 냈다. 주력부대는 여러곳으로 흩어졌고 혁명의지가 박약한자들은 대오를 떠났다. 거듭되는 타격을 받았지만 확고한 공산주의자들은 투쟁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주덕과 진의는 부분적인 부대를 거느리고 다시 북상하여 강서 경내에 들어갔다. 그들은 정강산에서 모택동의 추수봉기부대와 승리적으로 회합하였다. 그때로부터 모택동과 주덕은 중국로농홍군 제4군을 건립하고 유격전술을 창도해냄으로써 농촌혁명근거지를 창설하는 중국혁명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광동까지 갔다가 흩어진 수많은 혁명가들은 해륙풍으로 가서 농민운동에 참가하거나 다시 광주에 모여 광주봉기에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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