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로년
 
우리네 자랑 박성금 회장
http://hljxinwen.dbw.cn   2008-12-03 14:16:25
 
 
 
 
 

  (흑룡강신문=하얼빈 2007. 01.09)

  남들은 항상 손해만 본다고 그를 '머저리'라고 부르지만 이러한 '머저리'가 좋아서 한마디 원망도 없이 만년을 로년협회 사업에 받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박성금회장이다. 그가 있어 마냥 행복하고 화기애애한 우리들의 로인협회이다. 박성금회장은 1991년부터 장장 15년을 할빈시조선족로년문화협회 도리분회 회장직을 맡아 활동을 조직하고 조선족로인들의 화합과 친목에 기여를 해왔다. 그에게 남다른 열정과 근면, 희생정신이 없었다면 오늘까지 견지해오지 못했을것이다. 하다면 그에게 이러한 정신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그의 지나간 삶을 돌이켜보면 일목료연하게 안겨온다.

  1953년 치치할사범학교를 졸업한 그는 치치할조선족소학교의 창시자의 한 일원으로서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혼자서 몇개반을 가르치며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사업한 보람으로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한족학교의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따낼수 있었으며 후날에 학자, 전문가, 국가간부 등 인재로 자라나게 되였다. 후에 사업의 수요로 치치할시 교육국, 할빈시 제 52중학교 등 여러 단위들을 전전했지만 사업성과만은 혁혁했다. 선후로 치치할시 우수교원, 할빈시 우수교원, 흑룡강성우수교원 등 수많은 영예를 따안았으며 교원대표로 국경절행사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당과 정부에서 그에게 많은 혜택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번마다 이를 자신보다 더 곤난한 사람, 더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머저리'란 칭호가 따라다녔다. 벼슬도, 돈도, 영예도 양보하는 그가 일반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일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말든 자신의 방식대로 즐겁게 살아가는 그였다. 그는 사업에서 뿐만아니라 가정생활도 모범이 될만큼 열심히 살아왔다. 1958년 군의 간부로 사업하는 남편 리용근씨와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그는 현숙한 안해로, 아들, 딸을 모두 출세시킨 훌륭한 어머니로, 시부모 공대를 잘하는 모범며느리로 자기의 삶을 열심히 살았다. 화목한 가정과 훌륭한 경제기초를 가진 그는 만년을 편안하게 보낼수도 있었지만 퇴직하자 두전째 인생을 시작했다. 장기간 한족단위에서 근무하다보니 조선족들과 접촉이 적었고 그의 내력을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았기에 로년협회 회장직을 사양할수도 있었지만 자기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며 굳이 고생을 사서 하기 시작했다.

  회원들의 병문안도, 조해사업을 위한 회원방문도 자신의 돈을 팔아가며 나서야 했고 자칫하면 욕먹기가 일쑤였지만 자신의 덕이 부족해서 그랬을것이라고 가볍게 받아넘겼다. 그의 헌신적인 사업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해마다 도리분회는 할빈시조선족로년문화협회의 문예공연이나 활동에서 선진집체로 1등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우수회장 그 하나의 영예에 모든 고달픔도 가뭇없이 사라진다는 박성금회장, 그는 '머저리'로 남은 여생을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심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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