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 01. 06)
1934년 중앙소베트지역은 국민당의 제5차포위토벌을 이겨내지 못하고 위기를 맞게 되였다. 국민당은 동북을 강점하고 상해를 공격하는 일본침략자들과는 계속 타협하면서 50만 대군을 풀어 홍군을 토벌하였다. 당시 중국의 실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소련혁명의 성공경험을 공식적으로 답습하는 공산당 중앙지도부의 좌경로선으로 하여 홍군은 처절한 실패를 보게 되였던것이다.
1934년 10월 제5차반포위토벌전의 실패로 중앙홍군과 중앙령도기관의 지도자들은 운석산으로부터 장정을 시작하였다. 조선혁명가 무정은 중앙직속 제1종대, 제3제대 사령원 겸 정치위원으로 중앙지도자들과 함께 장정을 시작하였다.
홍군 포술전문가였던 무정은 장정초기, 군사위원회 제1종대 제3제대 사령원으로서 포병영, 공병영, 수송대대, 부속병원을 포함한 홍군기술부대를 지휘하였다. 전투가 가장 치렬한 곳일수록 무정이 거느린 포병부대가 뒤따랐다. 장정에 참가하였던 라원발(홍군 제3군단 5사의 퇀급 간부로 상강전역에 참가했고 후에는 6사 18퇀 퇀장을 맡음.)로인이 쓴 '라원발회억록'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장정을 시작한후 가장 치렬했던 상강전역이 시작되였다. 우리 5사는 팽덕회군단장의 명령을 받고 주야로 급행군하여 상강나루터를 점령하는 임무를 맡았다.…지휘부에서는 군사위원회 포병영 무정동지가 포병영을 이끌고 화력지원을 줄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장정에 나선 중앙홍군 주력은 림표가 거느린 제1군단과 팽덕회가 거느린 제3군단이였다. 공격에 능한 제1군단은 선봉역할을 많이 하였고 수비에 능한 제3군단은 엄호작전을 많이 하였다. 수많은 전투에서 무정은 줄곧 포병부대를 이끌고 팽덕회를 도와 전투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하였다. 그러나 우세한 적들이 사면으로 포위해왔기때문에 상강전역을 치른후 홍군부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홍군이 귀주성에까지 이동하였을 때 앞에는 설산이 가로막혔다. 부대의 령활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무기는 버려야 하였다. 따라서 포병부대도 다른 부대에 편입되여야 했다. 무정은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더욱 막강한 포병부대를 건립할 결의를 다지면서 포병부대를 떠나 지휘부에서 일을 보게 되였다.
대도하를 건느고 설산을 넘어 사천성의 파서에 도착한 중앙홍군은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였다. 홍군 제4방면군의 장국도가 당중앙을 통제하기 위해 무전암호를 거두어들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제3군단과 주력홍군 제1방면군의 련계가 끊어지게 되였다. 그때 제1방면군은 림표와 섭영진의 인솔하에 아계에 가있었다. 위급한 시각에 팽덕회는 새로운 암호를 만들어 제1방면군에 보내려 하였다. 그는 이 중요한 임무를 무정에게 맡겼다.
팽덕회는 회억록에서 그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억하였다.
'3군단에서는 무전기를 준비하였고 무전암호도 다시 만들었다.…무정동지(조선동지)를 파견하여 지북침(지남침)을 갖고 1군단의 지나간 행적을 찾아 꼭 무전암호를 림표와 섭영진에게 보내라고 하였다.'
무정은 임무를 맡고 길을 나섰지만 앞이 캄캄하였다. 아계가 어딘지 망망한 초지에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무정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지남침으로 방향을 확정하고 계속 걸어갔다. 그는 천신만고끝에 드디여 제1방면군을 찾아서 무전암호를 림표에게 전했다.
제3군단지휘부에서 속을 태우던 모택동은 무전신호가 오자 즉각 전문을 보냈다.
'림표, 섭영진 앞: 행동방침이 변하였으니 제자리에서 대기하라.'
제1군단 지휘부에서 자기의 무전암호로 전문이 번역되는것을 보고서야 무정은 흐뭇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후 무정은 중앙홍군과 함께 승리적으로 섬북에 도착하였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30여명 조선혁명가들이 홍군의 2만 5,000리 장정에 참가하였으나 결국 승리적으로 섬북에 도착한 사람은 양림과 무정뿐이였다.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설산, 초지를 지날 때 희생되였던것이다. 장정도중 홍군은 로획한 국민당의 비행기로 삐라를 살포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 비행기조종사가 바로 조선인이라는 기재도 있다.
강서성 서금의 작은 운석산에서 시작된 2만 5,000리 장정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홍군부대는 그 무엇으로도 전승할수 없는 강철의 대오임을 세인들에게 알려주었고 무산계급혁명투쟁은 최후의 승리를 이룩할것이라는 확신을 세계 피압박민족에게 심어주었다.
중앙쏘베트정부가 있었던 홍도 강서성 서금을 떠나며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강철의 대오속에 자랑찬 우리 민족의 혁명투사 양림과 무정이 있었다는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장정에서 희생된 이름모를 수많은 조선혁명가들에게 경의를 드리고싶은 심정이였다.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세계 무산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장렬히 희생된 조선혁명가들의 넋은 영원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