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05)
1952년 8월 11일 팽택민을 단장으로 하고 살공료를 부단장으로 한 중앙방문단 일행이 오전 6시 50분 할빈에 도착했다. 송강성과 할빈의 지도자들 및 각 기관, 단체, 공회, 학교와 할빈부근 각 현의 만족, 조선족, 회족, 몽고족, 허저족, 오르쳔족 대표 등 1만 5천여명이 할빈역에 환영 나갔다. 대표단은 역전광장에서 진행되는 각 민족인민들의 환영대회에 참가했다. 회의에서 할빈시 시장 왕일룬의 개회사가 있었고 송강성인민정부 주석 강효초의 환영사가 있었다. 이어 열렬한 박수속에서 팽택민단장의 연설이 있었다.
중앙방문단 팽택민단장은 연설에서 중앙방문단은 중앙인민정부와 모주석의 파견을 받아 동북 각 소수민족들을 방문, 중앙인민정부와 모주석의 각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를 전달하고 각 소수민족 인민들의 중앙인민정부에 대한 희망과 요구를 받아드리며 전국 각급 인민정부에서 모주석의 위대한 민족정책을 정확히 집행하여 얻은 빛나는 성적을 알려드리려 왔다고 했다.
중앙방문단은 도리에 있는 할빈화극원 극장에서 민족정책보고대회를 가졌다. 할빈시위와 시정부 직속기관 간부, 각 구정부 직속기관 간부, 각 소수민족 대표들 천여명이 참석하였다. 대회에서 중앙방문단 부단장 살공료가 근 반날이나 보고를 하여 회의 참가자들은 매우 심각한 민족정책과 애국주의 교육을 받았다. 이 회의에 참가하였던 당시 라림현 민정과에서 민족사업을 책임졌던 김명세는 30여년이 지난 1988년 3월 그때 일을 회억하면서 “중앙방문단이 할빈에 올 때 부근 현에서 민족사업을 하던 민족간부는 모두 회의와 모든 활동에 참석하였다. 우리는 마디얼호텔에 들어있으면서 민족복장을 입고 화극원 극장에 가서 처음으로 그렇게 생동한 민족정책보고를 들었다.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이 남아있다.”고 하였다.
중앙방문단은 남강대직가에 있는 국제려행사 5층 회당에서 각 소수민족대표 좌담회를 가졌다. 방문단 팽택민단장이 직접 참석하였고 송강성정부 리연록 부주석의 강화가 있었다. 좌담회는 주로 민족정책을 락실하는데 존재한 문제와 해결에 대한 요구와 의견을 청취하였다. 좌담회에는 할빈시와 부근의 각 민족대표 80여명이 참석하였다. 친절하고 조화로운 분위기속에서 좌담이 진행되였다. 이 좌담회에서 할빈조선중학교 교장 김정해가 조선족의 교육문제를 둘러싸고 발언하였다. 그때는 할빈시조선중학교와 소학교가 같이 있을 때라 이 발언이 후에 향방에 조선족중학교(지금 조선족제1중학교) 교사를 짛는 계기로 되였다. 좌담회가 끝날 때 매개인에게 기념마크와 민족정책 학습재료를 발급하였다.
중앙방문단은 할빈시내 소수민족단위를 방문하여 신입된 조사를 진행하였다. 회족들의 청진사, 회민련합회와 회민진료소를 방문하였고 조선족들의 중앙대가 39호에 있는 조선인회와 조선족문화관을 방문하고 조선족문화사업에 대한 현황을 검사하고 의견을 들었다. 방문단은 모주석께서 중앙방문단에 써준 제사 “중화인민공화국 각 민족은 단결하자”고 쓴 금기와 중앙방문단의 기념마크를 조선족문화관에 증송 하였다.
8월 14일 오전 중앙방문단 환영대회가 조림공원에서 열렸다. 송강성과 할빈시 각 민족 각 계층 인민들 3만여명이 집회했다. 조림공원 광장에 주석대를 만들고 국기와 모주석사진을 높이 걸었다. 주위에는 “모주석의 각 민족인민에 대한 배려에 충심으로 감사드린다”, “중앙인민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에 감사드린다”는 거폭의 붉은천 표어를 걸어놓았다.
송강성인민정부 주석 강효초의 환영사가 있은후 팽택민단장의 연설이 있었다.
팽택민단장은 모주석과 중앙인민정부를 대표하여 성시 각 민족 각계인민들에게 금기와 귀중한 례물을 증송하였다. 송강성인민정부 주석 강효초가 금기를 받으며 전성 각 민족 각계 인민을 대표하여 팽택민단장과 친절한 악수를 하였다. 계속하여 각 민족대표들이 귀중한 물품을 모주석께 올리는 순서가 되였다. 조선족은 부녀대표가 주석대에 올라가 동주발과 동술잔 등 귀중한 례물을 올렸다.
중앙방문단은 송강성과 할빈시에서의 방문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성하고 15일 저녁 10시 20분 차로 할빈을 떠나 치치할로 갔다. 성시의 지도자들과 각 기관 각 소수민족대표 1000여명이 역에 나가 환송하였다.
중앙방문단은 할빈에 오기전 송강성에 와서 먼저 목단강, 해림, 녕안, 가목사, 화천지구의 소수민족을 방문하였다. 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중앙방문단 접대사업에 참가하여 따라다녔다. 감동적인 몇가지 장면을 첨부하려한다.
중앙방문단이 해림현에 갔을 때 해림 신합촌 소학교운동장에서 환영대회를 열었다. 해림현과 해림구 각 기관 간부들과 해림구 11개 촌의 조선족 군중 2000여명이 모였다. 해림현 현장의 환영사가 있은후 살공료 부단장의 연설이 있었다. 이어 방문단은 중흥촌을 방문하였다. 그때는 해림에서 해남으로 가는 길인 해랑강에 다리를 놓치 않았을 때라 배로 강을 건넜고 마차를 타고 촌으로 갔다. 중흥촌과 부근의 몇개 마을에서 한주일전부터 길을 잘 수리하였다. 방문단이 마을에 들어서자 로인들이 민족복장을 입고 북을 치고 춤을 추면서 방문단을 환영하였다. 생산합작사 사원 최림조는 모주석께서 이처럼 소수민족을 관심하고 방문단이 수고를 무릅쓰고 벽지 농촌까지 찾아온데 감동되여 눈물을 흘렸다. 사호촌 하석룡은 모주석을 열애하는 심정을 표달하기 위하여 조상때부터 180년을 물려온 진귀한 놋술잔을 모주석께 선물하였다.
중앙방문단은 목단강을 떠나 가목사에 도착한후 8월 8일 성화집체농장을 방문하였다. 농장에서는 큰 환영대회를 열었다. 화천현 서경현현장의 환영사가 있은후 팽택민단장의 연설이 있었다. 그는 연설에서 성화집체농장의 탄생은 중국공산당과 모주석의 령도가 정확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조선족농민들이 자기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여 빛나는 성취를 이루었다는것을 설명한다고 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성화집체농장은 중국에서 가장 일찍이 세워진 집체농장이고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무어진 농장으로 전 중국 모든 농민들이 노력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화집체농장의 주석 김백산이 전체 장원을 대표하여 금후 농장을 잘 꾸리고 생산을 증가시키는 실제행동으로 중앙인민정부와 모주석의 배려에 보답하겠다는 결심을 발표하였다. 중앙방문단은 화천현정부, 성화집체농장과 트랙터공장에 금기와 기념마크를 증송하였다.
/서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