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속례절- 알아 두어야 할 례절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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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04)
혼인과 리혼
1. 혼인
조선민족의 혼인풍습에서 우선 들어야 할 것은≪동성불혼≫의 풍습이다.
조선민족의 고대종족들의 ≪동성불혼≫에 관한 문헌적재료로는 ≪삼국지≫가 있는데 이 문헌은 조선민족의 고대종족의 하나인 예의 혼인풍습을 언급하면서 ≪동성불혼≫이라고 기록하였다. 이 기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성이 같은 사람들간에는 혼인하지 않는다.≫는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는 씨족제도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성불혼≫이라 하기보다는 ≪근친금혼≫이였다고 할수 있다. 이것을 미루어보아 조선민족의 고대종족들사이에서 일정한 혼인규범에 준한 가까운 혈족간의 통혼이 금지되였다는 것이 사실이다.
3국(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에 이르러 일부일처제에 기초한 가부장적가족이 점차적으로 확립됨에 따라 그리고 한자성의 채용에 의한 성씨관념이 더욱 명백해짐에 따라≪동성불혼≫은 중요한 혼인규정으로 나서게 되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신라와 그후 고려의 왕가, 귀족내에서는 ≪동성혼≫,≪근친혼≫등이 존재하였었다. 하지만 이것은 후세에 이르러 비난을 받게 되였으며 점차적으로 금지되게 되였다.
이런 부계에 의한 ≪동성불혼≫의 풍습은 15세기에 이르러 가부장적가족제도에 기초한 종법관념의 확립에 따라 확고부동한 풍습으로 뿌리를 박게 되였다. 이를테면 ≪세종실록≫에 ≪혼례가 처음부터 바로잡혀 이성 5,6촌도 역시 서로 혼인하지 않으니 가히 미풍이다≫라고 기사한 것은 그 좋은 증거로 된다. 더욱이 17~18세기에 들어서면서 실학파에 속하는 진보적례론가들을 비롯하여 사회의 여론은 ≪동성혼≫을 극악한 루습으로 비난하고 그것을 미개한 소치로 돌리면서 ≪동성불혼≫을 우리 민족의 미풍으로 극구 찬양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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