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04)
두문불출(杜門不出)
이성계가 등극한 후 새 임금을 배반한 고려의 구신들은 조준(趙俊)의 아우 조윤(趙胤)을 비롯하여 원천석(元天錫), 김자수(金自粹), 김진양(金震陽), 서견 이숭인(李崇仁), 이집(李集), 이고(李皐), 윤충보(尹忠補), 야은 길재(冶隱吉再), 목은 이색(牧隱李穡) 등등 쟁쟁한 전조으 인물들이 모두 신조(新朝)에 불복하였다.
그 가운데서 조준의 아우 조윤은 호조판서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았고, 지금껏 해 오던 윤(胤)자 이름은 이를 쓰지 않고 견( )으로 고치고, 또 자(字)를 종견(從犬)이라 하고, 도류산 속에 들어가 버렸다.
`옛 주인을 잊을 수 없는 것이 개와 같다.`
`나라를 잃고도 죽지 못함이 개나 다름 없다.`
하는. 뜻이었다. 이렇듯 많은 유신들과 전조의 구신들이 신조를 배반하고 나오지 않았다.
권근 양촌(權近陽村)같은 사람은 그의 아들에게 태종의 딸을 시집 보내서 일종 결혼의 고등정책으로 새 왕조에게 환심을 사게 하려 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선비들이 신조를 따르지 않자 임금은 임금대로 불쾌했고, 또 신조의 신하들은 임금에게 충성을 하기 위해서도 별다른 방도를 강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안출된 것이 이른바 과거령이었다.
`신조에서 과거를 보인다.`
소문은 송경 안에 꽉 퍼졌으나 누구 한 사람 이에 응시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과거날이 당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