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04)
〔언 어〕
한국어는 일제식민지하에서의 어문말살정책으로 한때 수난을 겪기도 하였으나 광복과 더불어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공용어로 쓰였던 일본어로부터 받은 영향은 이후 상당한 기간이 흐른 뒤에야 청산될 수 있었다. 이 일본어 잔재의 청산작업은 광복 이후 전개된 ‘우리말 도로찾기운동’에서 비롯되어 최근까지 줄기차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하여 광복 이후 상당한 기간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던 일본어 계통의 어휘가 이제는 고유어로 대체되어 쓰이고 있다. ‘벤토·우동·야키만두’ 등이 한때 널리 쓰였으나 이제는 ‘도시락·가락국수·군만두’ 등으로 바뀌어 쓰이는 것이 그 예이다. 이러한 ‘우리말 도로찾기운동’은 한자어계 어휘에까지 파급되었는데, ‘전염병·성대·삼각형’ 등이 각기 ‘돌림병·목청·세모꼴’ 등으로 쓰임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과는 반대로 영어를 중심으로 한 서구어의 차용은 1960년대 이후의 급격한 산업화·근대화와 더불어 날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새로운 문물·기술·제도 등의 도입과 유관된 것으로서, 현재 우리말에는 ‘호텔·텔레비전·프로그램·밀크·햄·스토리·플롯’ 등 수많은 서구어 계통의 차용어가 들어와 있다.
한편, 8·15광복 이후 뜻하지 않았던 남북분단과 뒤이어 발발한 6·25전쟁을 전후로 하여 각지의 사람들이 피난 이동을 하게 된 결과, 언어의 대이동·대교류가 초래되어 ‘서울표준말’이 그 세력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이후 근대화정책의 추진으로 많은 농촌인구가 대도시인 서울로 흘러들어옴에 따라 더욱 심각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초·중·고등의 각급 교육기관에서의 표준어 교육, 그리고 각종 공공기관의 표준어 사용 등이 확산됨에 따라 표준어의 영향이 각 지역방언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 지방방언의 고유한 특성이 점차 퇴색해 가는, 즉 각 지방방언 사이의 혼효현상(混淆現象)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광복 이후의 언어상황을 기술하면서 특히 강조되어야 할 사항은 50여 년에 이르는 반도의 남북분단에 의하여 조선과 한국의 언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의 비극인 분단상황이 고착화되면 될수록 조선과 한국의 언어간의 이질성은 심화되고 말 것인즉,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언어의 이질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분단상황의 극복은 우리 시대의 막중한 과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