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2007.01.04)
광복 후 5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은 우선 일제 지배가 남긴 사회구조·제도·의식 등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다 38선에 의한 민족생활공간의 분단은 사회의 변화 방향과 구조에 대하여 원천적인 작용을 함으로써 한국사회는 건국의 이념에 따라 민주주의에로의 발전이라는 궤도 위에서 변화해 왔다고 포괄적으로 말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민주주의적 제도화와 생활양식화로서 정착되는 과정을 밟아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은 특히 정치 분야에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할지라도 그 시행착오의 한 단계마다가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사회적 차원에서 시민생활의 자유가 보장되는 조건들이 하나하나 정착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생활양식으로서의 자유의 신장과정을 민주주의화의 실질적 내용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특징은 북한에 있어서의 ‘인민생활’의 변화와는 원리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1948년 대한민국이 민주공화제 헌법 밑에서 국가로서 출발하였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입헌민주국가 형성이라는 과제는 그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근대화작업의 성공 여부에서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광복 후 가장 큰 사회변화의 요인은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공업화를 통하여 국민경제의 기반이 마련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며, 이것이 실질적으로 사회구조 변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 양적 팽창의 결과 눈에 보이는 변화는 물론이고, 그와 더불어 사회구조도 변화해 가고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시키는 이유와 동기의 폭도 변화하고 있다. 19세기 중엽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근대화를 도모해 왔지만, 실질적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생활구조와 생활양식이 변화한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한국인들은 이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공업화로 인한 발전의 가능성과 그 부담을 실감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이 정부 주도하에 진행된 면이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공업화 반세기의 역사가 지난 현재, 경제의 전반적인 발전방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경제의 형태로 발전하기보다는 자유·경쟁경제의 내용을 더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1990년 말 대한민국의 경제위기는 세계화·지구화(globalization)의 시대에 겪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이며 그럴수록 개방화·규제완화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제 한국사회도 구조개혁을 통하여 경쟁의 자유를 그 속에서 감당하게 되었고, 점차로 이해관계의 대립구조를 제도적으로 포괄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1980년대·199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노사관계·여야관계 등에 있어서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제도가 사회통합의 원리로서 정립되어 가고 있다. 이 문제가 앞으로 더욱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들이 착실하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민주주의의 이름 밑에서 상업주의와 이기주의가 공동체적 유대를 이완, 파괴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으며, 낡은 권위주의와 새로운 관료주의가 국가행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개선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은 기본적으로 정치·경제·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 관료적·권위주의적 방법에서부터 민주적 방법에로 전환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사회화의 정도에서 결정될 문제이다.
끝으로, 정치공동체로서의 대한민국의 장래문제는 민족의 통일문제와 본질적으로 관계된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는 통일된 민족사회의 미래상을 대한민국의 현실의 연장으로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통일이 아닌 평화적·민주적 통일은 사회발전을 통한 통일이라는 것이 민족적 당위성으로서도 당연히 제기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민족발전의 한 양상일 뿐만 아니라, 민족성원으로서도 개인의 자유와 민족의 통일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