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 ·English ·俄文 ·日文
 
전체기사  |  흑룡강  |  정치  |  경제  |  사회  |  동포사회  |  국제  |  진달래 작가방  |  톱 기사  |  사설·칼럼  |  기획·특집 PDF 지면보기 | 흑룡강신문 구독신청
您当前的位置 : 조선어 > 교육
[교원수기]답안을 찾으며 살아가는 인생
//hljxinwen.dbw.cn  2021-02-23 14:30:00

  계동현조선족학교 신복화교사

  인생은 마치 수없이 제기되는 물음에 대응하는 가장 알맞는 답안을 찾아내는 과정과 같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금광에서 금을 파내는 과정과 같다.

  나는 2001년에 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햇내기교원으로 교단에 서게 되였다. 세월이 류수라더니 어언간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1살 내가 사범학교를 졸업하였을 때 나의 앞에는 친구들처럼 사회의 조류에 발맞춰 연해도시에랑 나가 취직을 하는 길도 펼쳐졌지만 난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다 결국에는 어릴 적부터의 나의 소박한 꿈인 사랑하는 교원직업을 선택했다.

  교원직업에 종사하는 순간부터 모든 정열을 학생들에게 쏟아부었다. 난 알심 들여 교수안을 썼고 학생들의 수준에 알맞는 자주학습지를 밤새워가며 만들었다. 담임교원을 하면서 학습성적이 낮은 아이든 부모가곁에 없는 아이든 말썽꾸러기 아이든 모두 포기하지 않고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우리 반의 리태월학생은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와 함께 힘들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마저도 엄중한 신장염으로 병상에 누워있다보니 이 애는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나이에 되려 아버지를 돌보는 가장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렵다보니 항상 꾀죄죄한 옷차림에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고 몸매는 당금 쓰러질 것만 같이말라있었다. 하학하기 바쁘게 태월이는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달려가 아버지한테 밥을 지어드리고 빨래까지 해야 했으며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여야만 했다.

  한창 응석을 부리며 자랄 나이에 태월이는 가정을 떠맡고 집안일을 하느라 손이 마를 새 없었다. 집안 생활형편도 너무나 궁색했다. 나는 집에서 그들 부녀가 입을 수 있는 옷견지들은 몽땅 보따리에 싸서 보내주었고 개학해서 학용품을 살 때면 항상태월이 몫까지 챙겼다. 과일 같은 것도 사서는 그 애의 가방에 살그머니 넣어주군 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애는 조용히 나의 책상 우에 편지 한장을 남겨놓고 떠나갔다. 편지에서 그는 선생님이 어머니 같았다며 정말‘어머니’라고 한번 부르고 싶었다고 하였다.그리고 장래 꼭 성공하여 선생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했다. 비록 짧은 편지였지만 나의 가슴에는 뜨거운 난류가 흘렀다.

  세상일이란 순풍에 돛 단듯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교원사업을 하면서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부딪쳤고 그럴 때마다 고민에 휩싸이고 방황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자문하는 방법으로 우선 자기를 반성하고 각성하였으며 하나하나의 답안을 찾아내고그 소중한 답안들을 가슴에 안고 달려왔다.

  큰 도시에서 높은 로임으로 멋지게 살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우울한 나날을 보내며 사색의 깊은 심연 속으로 빠졌다.‘나는 왜 쥐꼬리만한 로임을 받으면서 교원이라는 이 직업을 버리지 못할가? 대도시에 나가서 근사하게 살 념을 않고 시골학교에 꾹 눌러앉아서 어디에 만족하며 애들을 지키나?…’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비록 친구들처럼 돈부자는 아니지만 학생부자임이 틀림없다. 내가 가르친 많은 학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열심히 자신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으며 종종 반가운 소식을 전할 때 그보다도 더 큰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중에는 성공한 학생들도 적지 않다. 더우기 교원이란 직업은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고 나의 어려서부터의 꿈이 아니던가! 난 후회가 없다.아니 여건이 허락할 때까지 학생들곁을 지킬 것이다!

  나는 주변에서 여유있게 살아가는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가끔씩 노래방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마작도노는 그런 한가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는 또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허둥대며 고생해서남보다 칭찬을 더 받나 아니면 돈을더 많이 받나? 왜 남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야 하냐고? 말이 교무주임이지 담임교원에, 두개 학년의 조선어문교수도 맡고 있지 않는가? 학생관리를 할라니 조선어문 교수를 할라니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를 검사할라니. 그야말로 학교에 오면 1분도 한가할 새가 없지 않는가?’

  가끔 주변에서 여유 있게 풍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가끔씩 노래방도 다니고 술도 마시고 마작도 노는 그런 한가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나는 또 생각한다.곰곰히 생각해보면 힘들다고 투정 부린 적은 있어도 어느 한가지일도 경솔하게 대한 적은 없었으며더구나 학생들을 소홀히 대한 적이없었다.

  ‘나는 왜 이토록 힘들게 살지? 그건 매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니까. 내 인생에서는 학생이 나의 전부 재산이니까. 학교는 내가 생명처럼 아끼는 나의 일터이니까. 그래, 그렇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투정을 부릴 게 뭐가 있나?’

  나는 또 어느새 자신을 반성해본다.가끔씩 또 이런 고민에 빠질 때도있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또 성적들을 따냈는데 동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학교로부터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때면 참 억울하고 슬프고 마음이 상한다. 하지만 내가 칭찬 받으려고, 인정 받으려고 교육사업에 종사한 것이 아니잖은가? 내가 그 노력성과를 들고다니며 남한테 긍정을 받으려는 것은 내 초심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 절대 아니다! 내가 땀 흘려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성장하고 훌륭하게 커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이야 말로 내 사업의 진정한 즐거움이 아닌가!

  간혹 동료들한테서 이런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신선생은 바보 아니예요? 또 뭘연구하고 있어요? 아무리 출근시간이라도 쉴 때는 쉬여야지. 왜 그냥 그리 바삐 보내세요? 그렇다고 누가 잘한다고 칭찬해줘요?”

  이런 말 들을 때면 기분이 별로이다. 그래서 난 또 자신에게 물어본다.‘그래 내가 정말 바보인가?…’

  답은 역시 아니였다. 모든 일에서나로서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최선을 다하는 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온갖 정성을 다 해서 꼭 해내고야마는 나의 성격때문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은 너무나 잘알고 있다. 내가 바라는 건 많은 훌륭한 학생들을 배양하는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학생들을 잘 가르쳐 인재로 양성하는 것이다. 그저 잠간 허영심, 자존심 같은 것이 작간을 부려 내가 정말 바보가 아닌가 하고 자신을 의심했을 뿐이다.

  세상은 그래도 비교적 공정한 편이다. 교원사업에 종사한 이래 난 현급, 시급 우수담임교원, 우수청년교원으로 평의되였고 성교수시합에서도일등을 따냈다.

  이미 졸업한 학생들이 교사절이거나 생일날에“선생님, 축하합니다! 선생님은 제 인생의 은인이십니다! 신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하며 걸어온 문안전화를 받았을 때, 해외에서 학생들이 정성 들여 부쳐온 소포를 받았을 때, 예전에 참 많이 애를 먹였던 아이들이 어엿하게 성장한 것을 보았을 때, 난 정말 내가 흘린 땀방울이 보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저 절로 긍지감이 벅차 오른다.

  인생길의 고개고개에서 제기되는 매 하나하나의 물음에 진지하게, 오로지 나만의 답안을 찾으며 살아온 내 인생이 자랑스럽다. 답안을 찾지않고 허둥대였더라면 아마도 내 인생이 얼룩져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원사업을 하면서 이 세상을 놀래울 만큼 거창한 일은 해내지 못했지만 교단이라는 이 성스러운 일터에서 나는 금빛찬란한 금덩이들을 파내듯이 나의 재능을 묵묵히 발휘하였고 매 학생들의 재능을 발굴해내지 않았던가?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성취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나는 계속 나의 평범한 일터에서 열심히 배우고 노력하면서 최선을 다해 글을 가르칠 것이며 그 즐거움 속에서 삶의 의의를 느낄 것이다.

· 북경 유니버설 테마파크 5월 개장
· 우리 학생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교원수기]답안을 찾으며 살아가는 인생
· 퍼스널 브랜드 시대: 뉴요커 ‘연변남자’의 이야기
· 김승철 한국화장품 마케팅전문가가 보는 중국내수시장 전망
· 흑룡강성, 빙설운동을 ‘룡강의 가장 매력적인 명함장’으로
· 성 제13기 인대 제5차 회의 원만히 페막
· 할빈 일부 관광지 박물관 영업 재개
· 성 제13기 인대 제5차 회의 원만히 페막
· 흑룡강성 20개 현에서 흑토경작지 보호 시점사업 추진
회사소개   |   신문구독   |   광고안내   |   제휴안내   |    기사제보    |   편집기자채용   |   저작권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