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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일미 우창미 ‘도화향의 대부’-전영태
//hljxinwen.dbw.cn  2018-06-07 19:27:00
 
 

  (흑룡강신문=하얼빈)이수봉 남석 기자= 헤이룽장성 우창시는 하얼빈에서 2시간 떨어진 곳이며 우리 동포들이 개발한 우창미는 중국의 ‘천하일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하일미’로 불리우는 우창미(五常米)가 이름을 널리 알리는데는 바로 전영태(田永太.80. 사진)씨의 공헌이 크다. 그는 우창미의 1등 공신이다. 전영태 벼종자 개발 전문가는 '도화향의 대부', '동북의 왠룽핑(袁隆平)'으로 불리운다.

  농민들은 전영태 전문가를 만나면 "당신 덕분에 우리들이 살고 났다"며 엄지손가락을 내흔든다. 가장 순수한 농민들의 가장 순수한 마음의 발로이다.

  2016년 ‘중국브랜드가치 평가정보’ 영예판에는 도화향을 전형적인 대표로 하는 ‘우창미’가 639억5500만위안의 브랜드 가치로 당당하게 ‘중국 제1미’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올해 5월 3일 , 전영태씨한테 또하나의 반가운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그가 개발한 ‘오우도4호’(도화향2호)가 제1회전국양질미(자포니카)품종품질감정에서 금상을 수상했던 것이다. 전씨 가족은 또 한번 명절의 기쁨에 빠졌다.정말로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전영태씨의 오늘이 있기에는 그가 흘린 피땀이 얼마인지 모른다. 헤이룽성농업위원회 왕찐훠이 주임은 “전노인(田老)이 개발한 도화향2호 벼종자가 없으면 우창미의 오늘이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사진= 두발로 자연에 다가가고 전야에 희망을 심어준 80대 고령인 전영태 벼종자 개발 전문가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한동현 기자

  

  절망 속에서 희망의 씨앗을 찾았다

  된서리가 내려 순박한 농민들의 희망을 송두리채로 뽑아갔다. 바로 전영태씨는 절망 속에서 희망의 종자를 발견했다. 그 이야기는 50년전인 1969년 9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그가 살고 있는 우창시 용봉산향에 큰 서리가 때이르게 내렸다.하루 사이에 용봉산향은 녹색으로부터 온탕 백색으로 변했다. 농민들의 일년 농사가 ‘나미아미 타불’이 되었다. 농민들은 폐농된 논밭을 막막하게 바라보며 수확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농민들이 아픈 마음을 헤아린 전영태씨는 더는 지린, 요닝성으로부터 도입한 벼종자를 심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그때까지도 우창에는 당지에 알맞는 내한성이 강한 벼종자가 없었다.

  “꼭 내 손으로 우창에 적합한 내한성이 강한 벼종자를 개발할 것이야 “

  당시 생산대장이였던 전 씨는 이렇게 큰 결심을 내리고 내한성이 강하고 미질이 좋은 종자를 선종하려고 주먹밥을 만들어 허리춤에 차고 전향(면) 300헥타르의 논밭을 샅샅이 누비며 다녔다.하루, 이틀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7번째날 점심에 논두렁에 앉아 점심밥을 먹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벼이삭 하나가 눈에 띄였다.

  “바로 저것이다!”

  당시 19살이던 전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먹던 밥을 내려놓고 그 벼이삭 곁으로 다가가 눈여겨 살펴보았다. 그는 이삭으로부터 벼대까지 조심스레 만져보고 자연이 내려다준 ‘선물’을 보배처럼 여겼다.

  자연잡교 변이(变异株)이삭이었다.벼종자 개발에서 양질품종의 변이 발생 확률은 만분의 2밖에 안된다. 또한 이런 변이를 인간이 발견할수 있는 확률은 만분의 1이다. 그런데 정 씨는 여직 3번이나 이런 자연변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양질 종자로 개발했다. 전씨는 12개의 풍만한 이삭을 갓난아기처럼 소중히 여겼다. 집에 가져가지 못하게 해서 생산대에 보관해두었다가 이듬해 봄에 남들의 눈을 피해 논밭 한가운데에 7줄을 심었다. 첫해 7줄에서 24킬로그램의 벼종자를 수확했고 이듬해 그 24킬로그램 종자를 심어 2500킬로그램의 종자를 수확했다.

    

▲사진= '도화향의 대부'로 불리는 전영태(우)씨와 가업을 이어 받은 장남 전창목 우창시용봉산장립향벼연구소 소장이 지난해 가을 논밭에서 선종하고 있다. /한동현 기자

  

  전씨는 종자를 마을의 전부 농민들한테 나누어 주어 심었는데 그가 살고 있는 51촌이 풍작을 거두어 벼를 털기 바쁘게 주변 마을의 농민들이 종자로 약탈하다 싶이 구매해 갔다. 51촌의 소득이 다른 마을보다 7배 가까이 높았다. 51촌의 7줄 벼에서 수확했다는것을 의미해 벼종자 이름을 ‘517’로 지었다. 1973년 우창현농업국(당시는 현급)이 감정을 거쳐 양질미로 인정했으며 이듬해 우창에서 대면적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창에 당지 벼종자가 없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농민들이 12년 동안 줄곧 이 종자를 심었다.

   

  ‘도화향’개발로 우창미를 ‘천하일미’로 만들어

  1981년 전영태씨는 용봉산향농업기술보급소 소장으로 전근했는데 전향 5만무 논밭을 샅샅이 구석구석까지 누비며 다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전 씨는 자연변이의 이삭을 발견하는 ‘천리안’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는 ‘517’종자에 이어 새로운 종자 개발에 팔을 걷고 나섰다. 1983년부터 1990년까지 그는 성내외의 1000여개 종자를 도입해 시험재배를 하면서 그 가운데서 우량한 종자를 개발했다.

  1991년 가을 , 또 한번의 선종의 계절이 왔다. 전 씨는 다른 사람들과 황금파도 설레이는 논밭을 누비다 논두렁에 쓰러졌다. 사람들이 다급히 병원으로 이송했다.의사는 간헐성 머리피공급부족이라고 진단했다. 의사는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그러나 전영태씨는 일년에 선종기회가 한번밖에 없는데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점심시간에 보급소에 와서 점적주사를 꽂아달라고 청들었다. 의사도 그의 견결한 태도에 못이겨 그의 의견을 들어주었다.그는 손전지를 들고 밤에도 논밭에 나가 이삭을 살펴보았다. 20여일간 선종했는데 ‘517’종자를 발견했던 곳에서 또한번 ‘기적’ 이 일어났다. 만분의 2 자연변이 이삭을 또 발견했다. 그때 발견한 이삭은 단립종과는 달리 낟알이 긴 장립종이었다. 그리고 밥을 짓을 때 향기가 사방에 풍겼다. 장립종 벼는 일반적으로 남방지역에서 자랐는데 추운 동북지역에서 자라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몇년간의 노력을 거쳐 1993년 마침내 ‘938’종자를 개발했다. 1993년을 기념해 ‘93’이라고 붙였고 ‘517’종자 개발의 뒷자리수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8’을 붙였다.

   

   

  ‘938’벼종자의 개발은 우창미의 품질을 향상하는데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헤이룽장성품종심사위원회는 ‘938’의 이름을 ‘오우도1호’로 명명했다. 후에 이 쌀은 중국정부로부터 1급 양질미로 인정 받았다. 그때로부터 우창미는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점차 ‘천하일미’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99년 전 씨는 ‘천리안’으로 새로운 종자를 발견했고 몇년간의 노력을 거쳐 ‘도화향2호’를 개발했다. 일명 ‘오우도4호’라고도 한다. 이 품종의 개발은 우창미의 비약적인 도약을 가져왔으며 동북쌀의 인지도를 더욱 높였다. ‘도화향2호’종자는 15년간 심었는데 지금도 그 ‘위력’과 매력을 과시하고 있다. 보통 3-4년 심으면 퇴화되고 도태되는데 이처럼 미질이 좋고 오래가는것은 드물다.

  현재 우창시의 수전면적은 240만무(16만 헥타르) 되는데 그가운데 ‘도화향 2호’재배면적이 230만무에 달한다. 동북지역에서 ‘도화향2호’를 심은 면적은 총 1000만무(약 66.7만 헥타르)에 달한다. 정부 부문의 집계에 따르면 ‘도화향2호’를 심은 농민들의 헥타르당 순소득은 타품종과 비교할 때 3-4배 차이가 난다.

  “내 나이가 80이 됐어도 종자 개발은 손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을에 실험전에 몇번 나가 봅니다. 현재 도화향2호를 대체할 유망 계통(品系)이 3개 있는데 실험중 입니다”

  그러면서 “조선족 귀향자들이 주변 사람들을 이끌어 농사짓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수원을 털어놓았다. ‘도화향의 대부’로 불리는 전영태씨는 “우창시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아요. 농민들이 아파트를 많이 삽니다” 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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