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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85년 파란의 삶 력사속으로
http://hljxinwen.dbw.cn   2009-08-19 14:54:51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전 김대통령과 50년 가까이 협력 혹은 경쟁관계를 유지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1997년 대선 당시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던 자유선진당 리회창 총재,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 등 정파를 망라한 전현직 정치권 인사들의 조문 발길이 이어졌다.

  전 김대통령의 일생은 그 자체가 굴곡진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였다.

  그는 박정희정권에서 신군부 정권에 이르는 동안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른바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라는 정파를 형성하며 민주화 세력의 량대 산맥을 이뤘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싸우다 몇차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겼다. 일본 망명중이던 1973년 8월에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랍치돼 생사의 기로에 처했다가 살아 돌아왔다. 전 김대통령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에는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미국정부의 교섭으로 가까스로 석방된 뒤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이런 고난을 이겨낸 그는 종종 인동초(忍冬草)에 비유되기도 했다.

  전 김대통령은 1985년 2•12 총선 직전 미국 망명에서 돌아온 뒤 김영삼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함께 이른바 '3김 시대'를 주도했다. 지역주의에 기댄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대통령선거에 4번째 도전한 1997년 정적 관계이던 전 김총재와의 ‘DJP 련합’을 통해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며 정치인생의 정점을 맞이했다.

  대선에 승리하자마자 당선인 시절부터 외환위기 사태 해결에 매진했고 1년만에 외환위기 극복을 선언해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해볕정책’으로 상징되는 대조선 유화정책을 펼치면서 전 김총재와 결별한 전 김대통령은 2000년 6월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분단이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을 갖는 등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한 공로로 그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로무현정권 초반 정상회담 대가로 거액의 돈을 조선에 건넸다는 '대조선송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는 퇴임후에도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며 민주당 지지층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해 왔지만 올 들어 급격히 건강이 악화됐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영면했다. 6년여의 옥살이, 5번의 죽을 고비와 2차례의 망명 등 숱한 고난을 이겨낸 그는 첫 수평적 정권교체와 력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주인공이였고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의 인생 역정은 '인동초'라는 별명처럼 고난과 이를 견뎌온 한국 현대사의 한 장이였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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