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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칼럼] 또 다른 고향
//hljxinwen.dbw.cn  2020-10-13 08:27:35

     작성자: 최유학

      최유학 략력 :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조선언어문학학부 부교수.

  저서 《박태원의 문학과 번역》과 역서 《내 녀자의 열매(我的植物妻子)》 등 출간.

  국내외학술지에 론문 다수 발표. 재한동포문학연구회 리사.

  1. 제1고향과 제2고향

  한 사람의 고향이 1234 이렇게 여러 곳일 수 있을까? 대학교 때 한 선배가 졸업하면서 나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한 곳에 3일 머물게 되면 한 달 머무는 데 문제가 없고, 한 곳에 3개월 머물게 되면 1년간 사는 데는 문제가 없고 3년만 한 곳에 꾹 머물고 산다면 한평생 사는 데도 문제가 없게 된다.” 이런 비장한 결심을 나에게 보여주고 졸업한 그 선배는 자신의 말 대로 상해에 취직한 후 그렇게 3일, 1개월, 3개월, 1년, 3년을 살아왔고 지금까지 헤아려보면 무려 25년간 상해에서 살았으니까 한평생 상해에서 사는 데는 하등 문제가 없게 된 셈이다.

  그 선배의 경우, 제1고향은 나서 자란 동북의 길림성일 테고, 제2고향은 대학교를 다닌 북경일 테고 제3고향은 상해라고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북경이 상해에 밀려서 제3고향이 되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많은 고향들 중에서 그 선배의 마음의 고향은 어디일까?

  동북에서 북경에 온 대다수 대학생들은 대학졸업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국 각지의 도시들에 취직하여 생활한다. 그들도 한결같이 고향을 여러 개 갖게 되며 항상 '또 다른 고향'의 심정을 경험하게 된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고향을 버린 사람'이 되여 '또 다른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며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은 어떤 향수를 달래고 있다.

  고향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태여나서 자란 곳,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처음 생기거나 시작된 곳 이렇게 총 네 가지인데 이 중 첫번째 의미 외의 다른 세가지 고향은 모두 또 다른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고향과 관련된 우리말 속담으로는 “고향을 떠나면 천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 사람들 중 고향을 떠나지 않은 자 어디 있으며 천하지 않은 자 어디 있으리오.

  2. 아버지의 고향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작은아버지(큰삼촌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의 고향은 현재의 한국 경상북도 의성군이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마늘을 좋아하셨고 나도 마늘을 좋아하는지를 뒤늦게 나마 곰곰히 분석해본다면 마늘의 고장 의성군과 어떤 연줄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한국 의성군에서 11년 살다가 중국에 건너와서 70여년을 사신 아버지의 고향은 어디일까? 할아버지가 먼저 일제시대 때 중국에 건너와 발을 붙이고 있다가 상황을 봐서 가족 전체를 중국으로 데려간다고 약속이 되여 있었는데 여러 해 동안 소식도 끊기게 되자 할머니가 결단을 내리고 11살난 아버지와 아버지보다 어린 고모와 작은아버지를 이끌고 광복을 몇개월 앞둔 1945년 1월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할아버지와 합류했다고 한다. 그것도 한군데서 쭉 살아온 것이 아니라 길림성 매하구에서도 살았었고 길림성 집안에서도 살았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고향을 말하자면 제1고향은 한국 경상북도 의성군임이 분명하다. 아버지는 마을 뒤동산의 감나무 얘기를 하셨고 할머니가 아프실 때 할머니를 위해 홍시를 구하기 위해 이집저집 다니며 홍시를 구하던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명절 때 친척들 집에 여러 군데 다니면서 이것저것 얻어먹었지만 친척집들도 가난하기는 다 마찬가지인지라 배를 채우지 못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고향이 그립다”, “가고 싶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가고 싶다 말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고향이 가고 싶었던 게 아니였을까.

  3. 망각의 고향

  사람은 기억을 잘하는 동물이지만 망각도 잘 하는 동물이다. 세상 사람 그 누구나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처음에는 사기충천해있다가 나중에는 여건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등 리유를 내걸면서 그 중요한 일을 차일피일 뒤로 미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대부분 결단력이 부족해서이다. 일상생활의 다른 바쁜 일로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그만 그 '중요한 일'도 한풀 꺾여 어느 모퉁이에 맥없이 조용히 숨쉬고 있다가 급기야는 망각의 늪에 빠지고 만다. 고향을 망각에 빠뜨리다니! 망각의 대가는 경우에 따라 매우 참담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늙으신 부모님과의 효와 관계될 때 더구나 그렇다.

  한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비교적 평온한 일상을 보낼 때는 앞으로 시간이 많을텐데 그때 가서 보자 라고 편한 생각을 하다가 그만 한국에서의 평온한 일상이 갑작스런 취직으로 깨어진 후에는 종적을 찾지 못할 정도로 감감무소식이 되고 만다. 북경에서 재취직한 후에는 장기간 한국에 가 있지 못하고 반년 미만으로 일정을 잡아 한국에 종종 가 있게 되였다. 그럴 때는 자주 오가게 되니 언젠가 덜 바쁘고 편할 때 보자며 또 미루게 되는데 그렇게 미루다 보니 그 흐른 세월이 십수년이나 되였다.

  아버지 고향방문일을 자꾸만 뒤로 미루는 데는 뒤로 미루는 나쁜 습관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한국에 갈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깊숙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건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효가 그만큼 엷어서였다고 이제 와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아버님의 고향 방문을 미루어오다가 급기야 생각이 나서 다소 무리수를 써서 부모님과 함께가 아닌 나홀로 가보게 되였다. 2년전 한국에 있을 때였는데 친구가 대구 가는 길에 나도 무작정 합류해서 따라갔다.

  아버지의 고향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서인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다 친절하게 보이었다. 서울역 앞에서도 오랜만의 고향 간다는 마음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기차 티켓도 사진을 찍어 남겼다. 대구에 도착해서 대구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마음은 들 떠 있었다. 택시기사아저씨의 경상도 말투가 어릴 때 고향사람들의 말투와 똑 같아서 그렇게 정다울 수가 없었고 남다른 용기로 상대팀을 누른 대구축구팀도 그렇게 대견하게 보일수가 없었고 먹자골목은 또 어찌나 마음에 들었던지 모른다. 대구관광이 이처럼 쭉 이어가는 유혹이 컸지만 나는 그때 용케도 오랜만에 결단력 있게 대구야 잠시 안녕!을 외친 후 하루 시간을 내어서 버스 역을 찾아 다인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는 고향 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였고 나이 젊은 승객은 나를 포함해 두 세사람이 전부였고 차는 좌석이 1/3도 차지 못한 다소 비여 있는 상태였다. 그래도 좋았다. 창밖 풍경들을 보배처럼 휴대폰카메라로 무조건 다 흡입하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 마음 좋은 택시기사를 만나 버스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고 아버지 마을에 계시는 어른을 찾아가서 용건을 이야기하고 그 분으로부터 마을 친척이 살았었고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는 집을 안내 받았다. 그 친척 집 앞에 가서 사진도 남겼고 주변의 감나무들을 유심히 눈으로 확인했다. 앞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다시 찾아오겠다는 작별인사를 마을 어른과 택시기사에게 남긴 후 나는 버스에 올라 대구로 돌아왔다. 대구에 와서 다소간 허전했던 마음을 가수 김광석 거리와 김광석의 노래가 달래 주었다.

  아버지의 고향을 내가 먼저 다녀보고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다녀보겠다는 생각은 몇 개월 후 엄청 아름다운 서울의 봄의 꽃들 속에서 무참히 시들고야 말았다. 망각의 대가는 참혹했다.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의 노래제목과 비슷했다.

  “사랑했지만 그대를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

  4. 가을에는 떠나지 말아야지

  2년전 아버지의 고향을 다녀갔던 그 전해, 즉 3년전의 가을에 나는 한국에 가기 전 동북에 있는 나의 고향에 갔었다. 부모님이 계신 나의 고향은 그 언제나 푸근했고 누나가 둘이나 고향에 계셔서 나의 마음과 몸은 항상 꽉 채워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작별하고 새벽에 택시에 오를 때 정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의 울먹임도 그렇겠지만 아버지의 눈이 예전보다 희미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척 아팠다. 북경으로 가는 렬차에서 나는 창밖을 바라다보며 다음과 같은 글을 휴대폰에 적어보았다.

  막내가

  가을에는 떠나지 말아야지

  이제 더는

  더군다나 가을새벽에는

  이슬도 이슬이려니와

  마음의 허함을 어찌하고

  그 밀려오는 아림과 쓰림을 어찌 감당하리오

  이별의 세파라고는 하지만

  가을에는 휘둘리지 말아야지

  앞으로 더는

  엄마의 눈물을 차마 뿌리치고

  아부지의 희미해보이는 눈길을 뒤로하고

  아, 목이 꺾여 내 어찌하리오

  추억의 막내사랑들이 뒤통수를 때려들와서

  이내 가슴에 한이 맺히길 없기다

  나의 간절한 기도는 통하지 않았으며 나를 깊숙한 망각의 늪으로 빠뜨렸다.

  

  대림칼럼은 동북아신문과 흑룡강신문의 공동주최로 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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