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신삼진공예품유한회사 전치국 사장
프로필
전치국 (38)
연변 안도현 출신
칭다오신삼진공예품유한회사 사장
중국 칭다오카스디아공무유한회사 사장
안도현 고향협회 회장
1996년 연변사범학교 졸업
1996년 7월-1997년 7월 안도현 송강6중 교원
1997년 7월부터 3년간 교주 모 한국공예품회사에 근무
(흑룡강신문=하얼빈) 이수봉 박영만 기자 = 현재 칭다오지역의 액세서리 수출량이 전세계의 약 30%를 차지한다. 한국기업들이 도금기술을 도입한 덕분으로 칭다오지역은 도금수준이 높아 수출량도 많다는 것이다. 칭다오 액세서리 기업이 1000개 되는데 조선족과 한국기업이 각각 반씩 차지한다.
전치국 사장이 자기 사무실에 진열된 특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향인 연변 안도현의
특산물을 가져다 칭다오에 판매하고 , 역으로 칭다오의 특산물을 동북에 가져다 판매해
양쪽의 경제 활성화에 모두 기여한다는 구상을 실천하고 있다,/본사기자
칭다오신삼진공예품유한회사는 현재 월 100만달러씩 수출하는데 칭다오 청양세관의 기록에 따르면 청양지역 액세사리 수출 1위를 차지했다. 전치국 사장은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완전 바닥을 쳤다가 다시 회생해 정상에 오른 평범한 사람들 중에 뛰어난 한 사람이다.
전 사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전 사장이 앉은 맞은 켠 벽에 특산물들이 진열되어 있는것이 퍽 인상적이었다. 회사 뜨락도 남달리 깨끗해 보였다. 관리가 잘 되는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전 사장을 취재하면서 겉으로는 조용한 선비같아 보이지만 내심에는 강한 오기가 있음을 느꼈다.
뜻이 있는 자는 반드시 성공한다
1996년 연변사범학교를 졸업한 전치국 씨는 사업에 대한 욕망과 열정을 가지고 안도현정부를 찾아갔다. 전씨는 사범학교의 문학사를 창건했고, 반에서 학습위원으로 활약했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전씨는 농촌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개학이 되어 학교에 출근해 보니 달랑 한반에 7명 학생이 있었다.
그는 1년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교원만 바라보는 어린이들이 마음에 많이 걸렸지만 장차 내가 성공해서 뜻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큰 기회를 창조해주겠다는 '꿈'을 품고 고향을 떠나 칭다오로 진출했다.
전 사장은 교주에 있는 모 한국 공예품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근면성과 성실함 , 그리고 총명함이 빛을 보아 짧은 시간안에 과장으로 승진해 전반 회사관리를 담당했다.
어느날 한국 사장이 그를 사무실로 불렀다. 당시 그의 봉급이 1500위안 이었는데 두달치 봉급과 기계 3대를 무료로 '선물'하며 회사를 떠나 독자적으로 경영해 보라고 건의했다.
2000년 전 사장은 감사한 마음으로 기계를 가지고 50제곱미터 되는 창고를 빌리고 5명 노동자로 액세서리 생산을 시작했다. 그것도 창업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뜻했다. 그의 신분도 과장으로부터 사장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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