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초진
1
종교는 가슴이 사랑에 빠지는 행위다. 나의 가슴이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사랑하는 대상만을 위하여 존재하게 된다. 가슴이 녀자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때 세상에는 오직 그 녀자만 존재한다. 다른 모든 녀자들은 나의 관심에서 사라진다. 가슴은 그 뜻이 그토록 한결같다. 그러나 가슴이 사랑에 빠지지 못하고 머리가 사랑에 빠진다면, 그것은 그 사람을 무척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만다. 물론 머리가 사랑에 빠질수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혹시 머리가 사랑에 빠진다면, 지나가는 모든 녀자가 다 눈에 들어온다. 자극을 준다. 그리고 마음이 산란하게 된다. 거기, 참 사랑이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가슴으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거기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관계가 형성된다. 영원한 사랑이란 그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때 사랑하는 두 사람은 각각 때가 되면 죽어갈것이지만, 그 '관계' 그 영원한 '가슴의 관계', 그 '사랑의 관계' 자체만은 영원히 남는다. 성서는 증언하고 있다. '사랑은 언제나 떨어지지 아니한다'.
종교는 '가슴'의 관계를 요구한다. 신앙은 가슴을 던져 사랑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종교는 한마디로 '가슴으로 살기'를 결단하는것이다. 그것을 실천하는것이다. 그것을 구체화하는것이다.
2
미주 오하이오 톨리도에서 오래동안 방사선과 의사로 이민생활을 하면서 좋은 시를 많이 발표하여 이민자들의 아픔과 서러움, 그리고 그 깊은 외로움을 달래주던 시인중에 마종기시인이 있다. 지금은 은퇴하여 플로리다에 거주하면서 시작에 전념하고 있다 그가 쓴 시들을 읽으면서 가슴이 젖어오던 기억을 잊을수가 없다. '우화의 강 1'을 소개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해쯤 만나지 않아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싶다.
어쩌면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은 하나의 꾸며낸 이야기, 곧 우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에겐 그것이 어리석은 이야기일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그 이야기는 익살과 풍자를 통하여 삶에 깊은 교훈을 제공하는 신화가 될수도 있다.
'우화의 강'은 그렇게 전설같은 이야기가 두런두런 흘러가는 하나의 강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강물은 누구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며, 어떤 가슴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그 궤적이 깊어가는 유장한 령혼의 강으로 흐를수도 있지만, 반면에 축축한 '물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욕망의 분화구, 그 메마른 공허만이 부끄러운 바닥을 들어낼수도 있을것이다.
마종기시인의 '우화의 강'에 나의 온몸을 담그고 있으면 출렁거리는 물살에 비취는 넉넉한 령혼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나의 가슴 거문고(心琴)를 두드려 울리는 친구의 맑고 깨끗한 웃음소리가 저편 강물 끝에서부터 흥건하게 젖어오는것을 느낄수가 있다. 그러면 쉘러가 지적한바, '형이상학적 경솔'에 가볍게 나를 내여던질수 없는 가슴의 언어들이, 저 혼자 깊어가는 수려한 강물에 누워, 흐르고 또 흐르게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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