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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대가 불끄러 가는 마음같다고 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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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5 10:36:22
 
     
 

  


  -57년간 민간문예 수집정리의 외길인생 달려온 리룡득선생

  1961년 8월,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였던 주덕해는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있는 민간문예자료들을 수집할것을 호소하였다. 민족문화를 계승, 보호, 발전시키기 위함에있어서 이보다 더 절박한 표현이 또 더 있을가?!

  개혁개방이후 홍수처럼 밀려드는 외래문화의 충격과 인구대이동의 거대한 변혁속에서 조선족전통문화는 뿌리마저 흔들리고있는게 실정이다. 이런 준엄한 시련속에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보호하고 계승,발전시키는것은 50여년전 주덕해주장의 말씀처럼 《소방대가 불끄러가는》그런 속도와 마음가짐으로 해나가야 할 급박한 상황이지 않을수 없다.

  이러한때에 민족문화의 보호와 계승, 발전의 중요한 내용인 민간문예 수집과 정리사업에 일생의 빛과 열을 고스란히 바쳐온 사람이 있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있다. 바로 조선족민담수집가이며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문화명인인 리룡득선생이다. 날이 갈수록 민간문예를 비롯한 허다한 민족문화들이 외면받고있는 현실이지만 리룡득선생은 57년동안이나 동요없이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에 자신의 일체를 묵묵히 바쳐왔다.

  지난 6월말,기자는 안도현에서 있었던 통련사업회의차 리룡득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73세 고령의 로인답지 않게 아직도 틈나는대로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을 견지하면서 신문, 방송, 잡지들에 민간문예작품들을 투고하고있었는데 이날 통련사업회의에서도 민담 한편을 내놓았다.

  선생이 걸걸한 목청으로 읽어주는 민담을 재미있게 들으면서 57년동안이나 민간문예수집정리의 외길인생을 걸어온 리룡득선생의 끝없는 집착의 이야기들을 더듬어 보았다.

  리룡득선생은 1954년 14살때 안도현초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더이상 공부를 못하고 고향인 량병향 보광촌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후 리룡득선생은 적적해하는 마을로인들을 위해 자원적으로 로인독보조를 꾸리고 저녁마다 로인들에게 신문을 읽어드리군했다.

  독보조에서 로인들이 옛말과 옛노래들도 들려주었는데 이러한 민간문예를 수집정리해서 신문잡지에 발표하기 시작한것이 바로 리룡득선생이 민간문예와 한평생을 함께하게 된 계기로 되였다.

  

  1981년 10월 안도현 영경향 조양촌 로인들속에서 민간문예를 수집하고있는 리룡득(가운데).

  1957년 7월, 리룡득선생은 가장 나어린 회원으로 연변제1차민간문예사업일군대표대회에 참가하였고 그것이 계기로 되여 정길운 등 연변의 제1대 민간문예수집정리가들과의 교류를 하게 되였고 민족문화유산으로서의 민간문예수집정리사업 중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인식을 할수있게 되였다.

  1961년 9월,연변민간문예연구회에서는 종합적인 민간문예조사팀을 편성하고 연변 각지와 흑룡강성, 료녕성 등지를 돌면서 민간문예자료들을 수집하였는데 리룡득선생도 민담조사팀에 참가하여 허다한 민간문예작품들을 발굴, 정리, 발표함으로써 중국조선족 민간문예발전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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