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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락엽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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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14:56:34
 
     
 

  (대련) 리삼민

  대련 모 회사에 출근하는 둘째딸의 간곡한 청구에 못이겨 나는 60여년 때묻은 고향을 떠나게 되였다. 이사하던 날 고향을 떠나기 싫은 나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하늘에선 마가을 찬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집을 팔고 이사짐을 꾸리고 동네사람들과 작별술을 마실 때는 너무 바삐 돌고 지치여 잡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나 정작 홀가분한 마음으로 멀어져 가는 고향을 뒤돌아보노라니 저도 모르는 사이에 두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산전수전 다 겪으시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산소, 제기차기, 줄뛰기를 하며 동년의 꿈을 키우던 학교운동장, 조금이라도 색다른 음식이 생기면 담장 너머로 음식을 건네주던 이웃집 할머니... 아, 고향은 원래 이런것인가. 나는 끝없는 명상에 잠기며 흩날리는 비바람에 떨어지는 락엽들을 바라보았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몇달전까지만 해도 내수를 힘껏 빨아들이며 움을 틔우고 잎을 펼치던 저 나무들이 왜 가을이 되면 맥없이 락엽을 날리는것일가. 그저 자연의 운치이고 만물의 법칙으로 생각하면 스쳐버릴 일이지만 수북수북이 쌓여지는 락엽은 나를 그리운 동년시절로 끌어갔다.

  1959년 이른 봄, 온 나라가 10년사이에 공산주의를 실현한다고 고아댔지만 백성들은 련속 3년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굶주린 창자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우리집도 쇠투리와 냉이풀을 넣은 강냉이죽으로 겨우겨우 연명해갔다. 갓 초중에 입학한 나는 푸대죽 세사발을 들이켜도 돌아서면 허기가 찼다. 어머니는 늘 마지막으로 식사하셨는데 푸성귀죽도 없으면 죽가마를 가셔 요기하셨다.

  어느 일요일,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갔다. 집식구들이 굶어 죽는다고 황무지라도 좀 일구겠다는것이였다. 울퉁불퉁한 바위와 나무들이 꽉 들어찬 산기슭에서 어머니는 괭이로 깊숙이 박힌 돌들을 하나하나 파내고 나는 광주리로 그 돌들을 날랐다. 한나절 역사질해서야 겨우 엉덩짝만한 밭이 나왔다. 아침에 먹은 푸대죽이 어디로 갔는지 배에서 련신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삽자루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엄마,이런 자갈밭에 무슨 곡식이 자란다고 그래요? 난 배고파 못하겠어요." 땅을 파느라고 땀투성이가 된 어머니는 강낭떡 하나 꺼내 내 손에 쥐여주면서 말씀했다.

  "산에 사는 나무와 곡식들은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 가을에 떨어진 곡식잎과 나무잎들이 썩어 거름이 되고 그 뿌리에서 또 새 싹이 나와 푸르싱싱하게 자란다. 이제 가을에 와보면 알게 될거다."그날 나는 강냉이떡으로 대충 요기를 했으나 어머니는 온종일 찬물로 굶주린 창자를 달래면서 100평방미터 될만한 밭을 일구고 감자를 심었다.

  그해 가을 우리 마을에서 10여명 아이들이 굶어 죽었으나 우리는 세마대 감자로 목숨을 건졌다.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아나는 감자, 먹지 못해 팅팅 부은 다섯식솔을 구해낸 감자, 감자 포기마다에 어머니의 피땀이 고인 그 감자…그때로부터 어언 50여년 지났다.

  우수수 락엽이 떨어진다. 승용차들이 개미처럼 내려다보이는 대련시 30층 아파트에서 오늘도 나는 빨간 단풍이 곱게 물든 중산공원을 바라보며 락엽귀근을 생각해 본다.

  락엽은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올곧은 마음으로 그 나무에서 자라 그 뿌리로 돌아간다.수양버들 휘늘어진 실개천이 오라고 손짓해도, 양지바른 옥토벌이 유혹해도 낮과 밤 따로없이 찾아가는 곳이 바로 그 나무 그 뿌리이다.

  락엽은 그 어느때나 자기를 몸 바칠 준비를 한다. 쌓이고 쌓인 락엽들이 서로 껴안고 대소한 추위를 몰아내는가 하면 찌는듯이 무더운 삼복철이 되면 그 뜨거운 열기로 자기 몸을 썩인다. 코를 찌르는 악취와 이름 모를 벌레들이 사정없이 덮쳐와도 락엽은 고스란히 거름으로 되여 나무를 키워주고 곡식을 자래우고 대지를 살찌운다.

  락엽은 또 조건 타발이 없다.백화만발하는 공원 숲속이라 뽐낸적 없고 물 한모금 주지 않는 벼랑이라고 짜증낸적 없으며 짓밟히고 으깨지는 길옆이라고 불평을 토로한적 없다. 사라진 곳에 집착하지 않고 오지 않은것에 마음 태우지 않으며 주어진 곳에 만족을 느낀다. 민둥산, 호박길, 바위틈…

  드팀없는 올곧은 하나의 마음으로 모진 설음과 고통을 이겨내며 움을 틔우고 잎을 피우다가 고스란히 땅속으로 들어가는 락엽,어찌보면 가더라도 조상의 뼈가 묻힌 고향을 잊지 말라고 속삭이는것 같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락엽들이 지는때를 기다려…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땅을 가꾸게 하소서

  령혼을 정화시키는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상상의 물고를 터치며 내 가슴에 안겨온다.

  아득히 깊은 곳으로부터 뭔가를 빨아들이는 그 풍부한 성량과 은은한 목소리에서 나는 60여년 갈고 닦은 철리―'락엽귀근'의 깊은 의미를 되새긴다.

  진달래 곱게 피는 래년 봄이면 고향에 가서 토실토실한 감자를 심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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