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조선족 물리학자 김광성교수의 외길 인생
자석은 왜 서로 붙을가, 지남침은 왜 항상 남쪽을 가리키지?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의문들…살아가면서 그 수많은 의문들은 삶에 부대끼며 지나온 길에 하나 둘씩 잃어버린다. 하지만 한 소년은 달랐다. 헐벗고 굶주리던 그 시절에도 그의 호주머니속엔 항상 령롱한 의문들로 가득했고 그것들과 동반해 소년은 물리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를 품고있는 물리학, 원 연변대학 물리학과 김광성교수(76)는 어쩌다가 이 신비롭고 오묘한 물질세계에 대한 연구속으로 빠져 평생동안 끈질긴 탐구로써 자신만의 고체물리학리론을 정리해냈다.
해살좋은 날, 약속시간에 어김없이 연변대학앞에 나타난 김광성교수, 한올 흐트러짐도 없는 짧은 백발과 갱핏한 몸매에 온화함이 물씬 풍겨나왔다. 그가 인터뷰요청을 어렵사리 승낙했던것은 단지 자신이 물리학연구를 오래전에 놓았다는 리유에서였다.
- 지독한 가난속에서 싹튼 꿈
1936년, 료녕성 본계시 환인현에서 김광성교수는 일곱형제중 한명으로 태여났다. 많은 식솔에 끼니를 이어대기 어려웠고 설상가상으로 팔로군에 참가했던 두 누나때문에 일가족은 국민당의 수색을 피해 이곳저곳 피난을 다녀야 했다. 국민당이 집을 포위하고 누나들의 행방을 대라고 윽박지르는바람에 벌벌 떨기만 하다가 다행히 마을에 명망있는 어르신이 보증해줘 겨우 풀려난적도 있었다.
그런 란세판이다보니 공부라곤 일본이 투항할 시점 일본소학교 4학년을 다니다 그만둔것이 전부, 극심한 식량난과 도피생활속에 공부는 그저 사치일뿐이였다.
해방이 되고나서야 못 다한 공부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마침 현성에서 200리 떨어진 곳에 있던 관전현조선족중학교가 현성으로 옮겨오면서 1학년 학생들을 모집하게 되였다. 하늘이 내려준 기회라고 생각한 김교수는 마음을 다잡고 시험장에 들어섰다. 자신이 알고있는 답안을 모두 써넣고 자신만만히 시험장을 나왔지만 결국 응시생이 너무 적어 반을 편성하지 못한다는 통보였다. 마음속으로부터 올리솟는 울분을 토할길이 없어 헤매고있을 때 다행스럽게 1, 2등 두명만 뽑아 편입생으로 받는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두말할것도 없이 그번 시험의 1등은 단연 김광성교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