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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고향에
//hljxinwen.dbw.cn  2019-01-11 11:11:26
 
 

  오상시 쌍원촌 사람들 집금해 고향건설 적극 지원

  (흑룡강신문=하얼빈) 김일선, 김철진 기자= 요즘 벼값이 소폭 하락해 모두들 금년의 논도급비용이 떨어질가봐 걱정하고있을 때 오상시 소산자진 쌍원촌(촌지부서기 박대선)의 촌민들은 되려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지난해에 논도급비용이 평균 헥타르당 3000원씩 껑충 올랐기에 혹시 얼마간 내려가더라도 손실을 얼마든지 상쇄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럼 어떤 상황이였기에 도급비가 단꺼번에 부쩍 뛰여오를수 있었는가? 이에 촌민들은 논밭으로 가는 3킬로미터의 흙탕길을 몽땅 콘크리트로 새롭게 포장한데다가 마을에서 농토수리기본건설을 잘 해 도급자들이 농사짓는데 큰 편리를 가져다주었기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있다.

▲사진= 농전수리기본건설이 잘 된 논밭이 한눈에 안겨온다. /김철진 기자

  하다면 촌집체의 재력도 별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인데 어떻게 3킬로미터나 되는 멋진 포장도로까지 닦아놓을 수 있었을까?

  오상시 소산자진 산하에 있는 쌍원 조선족마을은 2002년에 현지의 홍원촌과 쌍원촌이 합병돼 세워진것인데 합병당시 두 마을의 총 가구수는 168세대로 500여명이 거주하고있어 오상시 동부지역에서 비교적 큰 조선족마을로 꼽혔다. 하지만 2002년부터 국외나들이와 도시진출붐의 영향을 받아 촌민들이 하나 둘 한국으로, 국내 대도시로 빠져나가면서 마을의 상주인구도 급감해 현재 홍원과 쌍원에 남은 주민은 겨우 9세대뿐이다. 하지만 마을을 지키는 촌간부들과 촌민들은 맥을 저버리지 않았다. 특히 박대선씨가 촌지부서기로 부임한후 촌집체를 잘 운영해 40여만원에 달하는 묵은 빚을 청산하는 한편 국가로부터 25만원의 자금을 쟁취해 관개용 우물 25개를 팠으며 6000미터나 되는 관개수로를 건설해 농사짓는데 소요되는 물자원을 확보했다. 이처럼 농토수리기본건설이 잘 된 덕분에 벼산량도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논밭으로 가는 마을 길이 흙길이다보니 매번 비가 올때면 온통 진창길이여서 농기구는 커녕 어떤 곳은 허리까지 빠질 정도로 출입이 불편했다.

▲사진= 비가 오면 온통 진창길이였던 옛 마을 길. /김철진 기자

  그러던 2017년 오상시정부에서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일환으로 소산자진 산하의 여러 촌의 마을길을 콘크리트로 포장해주는 공사를 가동했다. 시교통국의 계획에 따라 쌍원촌에 너비가 4.5미터이고 길이가 3킬로미터에 달하는 마을 길을 닦아주기로 했는데 국가에서 180여만원 투자하고 마을에서 스스로 39만원의 부대자금(配套资金)을 해결해야 했다. 마을의 형편을 보면 빚은 별로 없는 편이지만 단꺼번에 39만원의 거액을 내놓는다는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물론 린근에 있는 타민족 마을에서는 어마어마한 부대자금앞에서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모처럼 차려진 기회인지라 차마 쉽게 포기할수는 없었다. 박대선씨는 어깨가 무겁기만 했다. 어떻게 이 자금을 해결할것인가? 밤잠을 설치며 여러날 고민하던 끝에 박대선 지부서기는 한국과 국내 대도시에 진출한 촌민들의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6월 26일 박대선씨는 국가에서 고향마을에 포장도로를 닦아준다는 이 기쁜 소식과 아직 부대자금이 39만원 부족하다는 정황을 한국에서 려행사를 운영하고있는 고향사람 최석태씨에게 알려 재한국 쌍원촌 촌민들의 위챗그룹에 통보하는 한편 재청도 고향사람들의 위챗그룹에 직접 정황을 알렸다. 당시 쌍원촌은 한국과 국내 대도시로 떠난 촌민들이 수백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한국의 중소기업, 건축업, 료식업과 서비스업에서 억측스레 일을 하며 땀동이를 흘리고있다. 돈은 좀 벌고있지만 역시 생활고에 시달려 쉬운 편은 아니였다.

▲사진= 박대선(가운데) 촌지부서기가 콘크리트로 새로 포장한 마을 길 주변의 농토수리기본건설계획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김철진 기자

  고향마을에서 마을 길을 새롭게 닦는다는 소식이 한국과 국내에 있는 쌍원촌사람들속에서 전해지면서 집금활동이 본격 시작됐다. 박만선 5만원, 량만식 5만원, 김학송 3만원, 조남권 3만원, 리수길 3만원, 안군선 3만원, 신경섭 3만원, 엄경술 2만 5000원, 김오선 2만원, 차선학 1만원...... 타향에 있어도 마음은 항상 고향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원래 한달쯤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던 집금이 불과 나흘만에 마무리된 것이다. 집금자들중에는 지난세기 90년대에 호적을 떼서 멀리 청도로 이사간 안군선씨(홍원촌 전임 지부서기 안성천의 아들임)와 길림시에 거주하는 차선학씨도 포함됐는데 이들은 각기 3만원과 1만원을 흔쾌히 기부하면서 고향마을의 아름다운 변모를 기원했다.

▲사진= 마을을 지키는 촌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정황을 통보하고 있다. /김철진 기자

  고향사람들의 열정적인 지지에 힘을 입은 박대선씨는 마을 길 포장도로공사를 진행하는 기회를 빌어 해당부문으로부터 300미터의 포장도로 건설지표를 더 얻어 원래의 낡은 마을 길을 다시 수선하는 한편 림업국으로부터 2000그루 되는 가문비나무(云杉)를 지원받아 마을 길의 량켠에 심어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했다.

▲사진= 량쪽에 가문비나무를 즐비하게 심어놓은 새 마을 길에서 자가용차가 달리고 있다. /김철진 기자

  박대선 촌지부서기는 "돈 한푼 벌기 쉽지 않은 요즘 세월에 고향사람들이 쌍원촌을 위해 거액을 해결해주셔서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싶다"며 "마을 길을 콘크리트로 새로 포장한후 농사짓는 조건도 많이 개선돼 지난해 논도급비용이 헥타르당 1만 2000원에서 1만 5000원으로 뛰여올라 단 홍원촌의 400헥타르 논에서 올린 수입만 해도 120만원을 넘겨 마을 촌민 리익의 최대화를 실현했다"고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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