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文 ·English ·俄文 ·日文
 
    전체기사  |  흑룡강  |  정치  |  경제  |  사회  |  한민족사회  |  국제  |  진달래 작가방  |  톱 기사  |  사설·칼럼  |  기획·특집 PDF 지면보기 | 흑룡강신문 구독신청
您当前的位置 : > 한민족사회
무용수에서 크루즈비지니스맨으로
//hljxinwen.dbw.cn  2018-09-27 09:41:21

  -일본에서 새로운 꿈을 펼친 이광철씨를 만나다

  (흑룡강신문=일본) 전례없이 더웠던 2018년 여름이 끝나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9월의 어느날, 필자는 동경 우에노의 한 레스토랑에서 갓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 한쌍을 만났다. 오늘은 새신랑인 이광철씨의 이야기를 여러분들께 들려드리려고 한다.

  무용과의 인연

  중학생시절 그는 또래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힙합음악을 좋아하고 댄스를 좋아하는 소년이였다. 우연히 그의 무용소질을 발견하게 된 큰이모가 무용을 전문적으로 배우기를 건의했고 그것을 계기로 17살에 예술학교에 입학했다. 체계적으로 무용을 배운것이 아니였고 늦게 시작한터라 예술학교 시절 그는 전공에 집중하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면서 다른 친구들과의 차이를 좁혀갔다.

  어린 나이였지만, 스스로 천재가 아닌 이상 오직 노력만이 성공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 그는 3년간의 노력으로 20살에 연변가무단에무용수로 입단하게 되였다. 가무단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전국소수민족문예회연-천년아리랑'의 무용수로 참가한 전국순회공연인데 그 공연이 나중에 대상을 탔다. 그는 키가 작은 결점을 극복하면서 남자무용수 중에서는 공연 참가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가무단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에 정식편제도 받게 되는 행운을 안았지만 순회공연으로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시야가넓어진 그는 더 큰 꿈을 품게 되고 더 큰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졌다. 많은 고민끝에 그는 22살에 대학시험에 도전하게 되며 우수한 전공 및 문화과 성적으로 길림예술학원에 입학하게 되였다.

  대학시절의 일과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무용의 기본연습을 하고 저녁 9시의 마무리연습을 견지하면서 매일 '연습-공부-연습-공연'이라는 과정의 반복이였다. 그 시절의 탄탄한 기초가 있기에 지금도 일주일정도 연습을 하면 그때의 기본적인 무용동작은 바로 표현할수 있다고 한다. 방학기간에는 유학준비 겸 북경의 문화를 체험하고자 북경예술중심에서 열리는 워크숍도 참가하고 조선무용을 포함한 민족무용외에 현대무용도 배우면서 장르를 넓혀갔다.

  대학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변대학 예술학교의 요청을 받아 학생들에게 현대무용을 가르치게 되였다.비록 짧은 한학기동안의 교학이였지만 가무단 및 대학시절 배운 무대감독, 중국고전무용, 민족무용 등 경험을 살려 수업시간에는 학생들보다 더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되였다.

  꿈꾸어 왔던 미국 유학은 결국 언어 및 비용때문에 아쉽게도 무산되였지만 대신 그는 더 큰 행운을 맞게 되였다. 2012년 중앙인민방송국에서 기획하고 오향옥감독이 총감독을 맡은 우리 조선민족의 백년이민력사를 서술한 대형음악무용서사시-'꿈의 아리랑'에 그가 무용편집, 백업스테이지 총감독 및 무용수로 참가하게 되였다. 이 무대는 2013년 8월 공연되기까지 1년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쳤는데 그는 총감독과 함께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문예계 관계 인사들을 만나고 음악감독, 복장, 무대 등 각 부문의 책임자들과 조율하고 연락하는 역할을 맡았다.그중 가장 인상깊었던것이 조남기 장군의 연변저택을 방문하여 친필축하메세지도 받은 일이다. 1년동안 그는 인간관계 대처부터 전체적인 마케팅,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지식을 몸에 쌓게 되였다.

  꿈많은 청년, 한국으로 가다

  '꿈의 아리랑'의 연변 위문공연을 마감으로 그의 예술인생은 잠시 막을 내린다. 어릴적부터 상상했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습은 멋진 양복을 차려입은 비지니스맨이였다. '시장에서 고사리를 팔더라도 사장이 되고싶다'는 생각에 그는 비지니스맨에 대한 꿈의 실천을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3년동안의 무용인생을 포기해야 하는것에 고민도 많았으나 충분히 즐겼고 새로운 삶도 경험해보고싶다는 생각에 그의 몸과 마음은 들떠있었다.

  한국에 가서 처음 접한것이 여행사업이였다. 아무런 경험없이 창업을 할수는 없는 상황이였기에 한 여행사의 의료관광사업부에 입사하게 된다. 한국의 발달한 의료서비스와 여행을 접목한 사업으로 그는 많은 고객들을 만나게 되고 인맥을 쌓게 되였다.

  1년반의 회사생활을 거치고 그는 독립하여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가 그린 그림은 여행업 기반으로 문화교류를 겯들인 MICE산업(기업회의, 포상관광, 컨벤션, 전시박람회와 이벤트 등의 영문 앞글자를 딴말)이였다. 중한국제청소년문화교류프로그램의 한국측 책임자로 한국의 과학기술관, 박물관 등 투어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또 기업세미나, 기업회의 등에 대한 개최와 서울시에서 주최하고 정부기관에서 주관한 서울시청소년축제 등 많은 프로그램에 우리 중국의 어린이들을 참가시켰다.

  마이너스투어(즉 운영비를 고객의 쇼핑마진에 나오는 투어방식)가 많았던 여행업에 종사하면서 그가 견지한 원칙은 바로 고객이 지출한 비용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것이였다. 정직한 그의 경영방식은 많은 고객들을 감동시켰고 일부 고객들과는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 그의 결혼식 참가를 위하여 중국에서 일본까지 달려온 고객들도 있었다.

   몸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것이 무용이라면 의료관광이라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그는 말 잘하는 방법을 배웠고 중국을 떠난 다른 어떤 나라에서든지 노력만 하면 잘 살수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던 그는 5년동안의 한국생활과 승승장구하는 사업을 접고 일본에 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기 때문이였다.

  배우자와의 만남 그리고 더 높은 도약

  인연이 있으면 천리를 가도 서로 만난다고 중학생시절 동창이였던 안해와 다시 만난것은 한국에서 여행사업을 할 때였다. 그가 중학교 동창들의 온라인대화방을 만들면서 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왔던 안해와 다시 연락이 닿은것이였다. 한국-일본을 오가며 사랑을 꽃피우던 청춘남녀는 그가 일본으로 오게 되면서 그 결실을 맺는다. 일본의 문화산업이 한국보다 더 발달했고 언젠가 일본으로 진출하려고 했던 그의 목표가 안해와의 만남으로 더 빨라지게 된것이다.

  일본으로 오게 된 그는 자신의 경력을 살려 일본에서의 여행업 전개를 모색하고있던 중 안해와 함께 크루즈여행을 갔다오면서 크루즈여행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기회는 준비된자한테 온다더니 마침 대만에 아시아 본부가 설립된 크루즈여행 플랫폼의 일본진출 소식을 알게 되였고 점점 대중화 되고있는 크루즈여행산업이 사업기회라고 생각하여 부부가 합심하여 바로 회사와 계약을 하고 사무실을 오픈하였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 사업은 크루즈 여행을 원하는 고객들에게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며 300척 크루즈에 1800개 항로를 주로 운영하고있다. 이 사업을 통해 그는 원하던 공정여행플랫폼을 고객들에게 제공할수 있게 되였다. 원하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선택하여 비행기표, 호텔비용, 음식, 쇼핑 등을 한번에 해결할수 있는 크루즈여행을 통하여 고객들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있고 여행이 끝나면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그는 그때가 바로 이 사업을 하는 보람과 희열을 가장 많이 느낄수 있는 때라고 한다.고객들에게 행복을 주려고 시작한 사업인데 그 행복이 배로 돌아오는데서 에너지를 다시 받고 힘을 낼수 있다고 한다.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새로운 사업이지만 행복을 선물하는 이 사업이 너무 즐겁고 즐겁게 일할수 있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며 성공은 자연스레 따라오는것이라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인연을 소중히 여겨 지금도 예전의 선생님들과 도움을 줬던 많은 지인들에게는 명절때마다 잊지 않고 안부인사를 하는 그는 '인사를 잘하는 사람'으로 되기에 노력한다. 사소한 문의사항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는 그의 서비스태도에 여행을 갔다온 모든 고객들은 엄지척을 내민다.

  자신의 취미를 사업으로 바꾼 그들 부부는 결혼식도 크루즈에서 올렸다. 결혼식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에게 축의금 대신 크루즈 여행이라는 선물을 되려 준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있노라면 30대의 문턱을 갓 넘긴 젊은이라고 믿기 어렵다. 그는 인연을 소중이 여길줄 알고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건실한 청년이며, 또 20대 초반에 이미 세계일주 여행을 마치고 현재 자신의 사업을 알차게 운영하고있는 든든한 옆지기인 안해가 있다. 그는 현재의 사업에 몰두하면서 동시에 일본에서의 조선족사회에 자신의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작은 힘이라도 공헌하고싶다고 한다. 10년뒤 자신의 창업스토리를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야무진 꿈도 가지고 있다.

  글로벌무대에서 날개를 힘차게 펼쳐가고 있는 이광철씨, 10년뒤 그의 더 멋진 모습이 기대된다.

  /김진현


· 강은 옛강이로되
· 재한조선족, 개정된 한국 도로교통법 미리 숙지하세요
· 10월1일 이후 슈퍼에서 물건 살때 꼭 이 표식이 있는가 살펴보세요.
· 수다, 산책…암을 막는 뜻밖의 건강 습관 7가지
· 오성회 9월 월례대회 개최
· '루한 여친' 관효동, 아이유 뮤직비디오 표절 의혹
· 주칭다오 한국총영사관 한국 국경일리셉션 개최
· 윤금철 사장 안마기 체험센터 오픈
· 한국이화여자대학교 유학 설명회 칭다오서
· 제1회 산둥성동포어린이 우리말축제 개최
추석맞이 불꽃놀이
"쌀알 1억 개 세어 와라"…초등학교...
인도, 힌두 여신 시바로 분장한 학생들
패션잡지 표지 장식한 ‘뚱뚱한’ ...
동영상
2018년도 중국 조선어문 신조어 번...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어...
'도화향의 대부','동북의 袁隆平'--...
한장에 2원짜리 과줄로 한가족 먹여...
포토
회사소개   |   신문구독   |   광고안내   |   제휴안내   |    기사제보    |   편집기자채용   |   저작권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