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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를 '먹고 사는' 사나이
//hljxinwen.dbw.cn  2018-08-09 14:32:51
 
 

    중국공정원 원사 분자바이러스학 선두주자 김녕일 교수

    

  (흑룡강신문=하얼빈) 남석 기자= 2003년 SARS(非典), 2004년 조류독감, 2009년 A형 H1N1 독감, 2013년 H7N9독감…무서운 바이러스가 기세 사납게 지구촌 곳곳을 강타하며 취약한 인류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위협했다. 온 지구촌이 공포에 떨었다. 인류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본격 시작되었다. 이 총성 없는 전장의 중심에 ‘바이러스의 천적’, 중국 공정원 원사, 중국인민해방군 군사의학과학원의 김녕일(62) 교수가 우뚝 서 있다.

    

  고학(苦学)의 길을 걷다

  김교수는 1956년 3월 길림성 룡정의 교원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일이 구소련공산당 수령 레닌(列宁)과 하루가 차이 난다고 해서 세간에 흔치 않은 이름 ‘녕일’이라 지었다고 한다.

  김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대자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에 남달리 호기심이 많았다. 그때마다 물리교사인 아버지에게서 문제의 답을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부모님의 엄격한 훈육하에 김교수는 고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74년 중학교를 마친 김교수는 당시의 하향 붐에 떠밀려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러 통화의 어느 시골마을에 내려갔다. 그는 밭을 일구고 관개수로를 뚫으면서 손에 흙이 마를 새 없이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모택동선집, 레닌전집, 반듀링론 등을 밤 늦도록 통독했다. 이런 서적은 그가 세계관을 수립하고 종국적으로 자연과학을 선택하는데서 방향타적 역할을 했다.

  대학시험제도가 회복되자 김교수는1982년 연변농학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농학원의 조교로 배치받았다. 사실상 80년대 초는 대학생도 흔치 않아 사회적으로 대우 받는 때였지만 그는 불과 반년 만에 사직서를 내고 군사수의대학의 석사과정을 밟았다.

  석사과정을 통해 바이러스학을 기본으로 습득했지만 학술의 선두주자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 깊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더욱 알찬 충전이 필요했다. 김교수는 계속하여 박사공부를 시작했고 1994년에 마침내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같은 해 석사생 도사로, 1999년 박사생 도사로 발탁했다.

  과학연구가 깊어질 수록 여러 학과의 교차와 융합이 필요했다. 김교수는 지금도 생물, 화학, 유전공학, 분자물리학 등 여러 가지 학과와 관련 정보를 수집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한다.

    

▲사진= 집무실에서 자료를 찾고 있는 김녕일 원사.

   

  장인정신으로 바이러스 연구에 몰입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할 때 나는 이미 그 일을 끝내야 하며 다른 사람이 걸을 때 나는 뛰어야 한다.” 이는 과학연구에 대한 김교수의 신조이다.

  김교수는 “바이러스에 강한 백신을 만들어서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으면 삶이 얼마나 더 행복해 질가? 이런 생각에서 석사공부를 할 때부터 바이러스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연구동기를 일축했다.

  김교수는 1982년부터 현재까지 연구진을 이끌고 조류독감, 구제역, SARS, 갑형H1N1 류행성감기 등 12가지 바이러스를 분리하고 바이러스의 특성, 감염과 발병 관련 극치리론인식을 풍부히 했으며 바이러스병 병원체 인지범위를 확장하여 중국의 해당 분야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김교수는 1985년 전국에서 제일 처음으로 구제역과 B형간염 바이러스 유전공학백신을 연구했고 성공적으로 천연두백신(疫苗)바이러스 유전자재결합활캐리어 표달계통 플랫폼(平台)을 구축, 천연두백신 바이러스캐리어가 효과적으로 표달하지 못하는 국내 외의 난제를 해결했다.

  김교수는1990년부터 에이즈 예방퇴치 연구, 에이즈바이러스 예방백신을 연구한 토대위에서 1997년부터는 치료와 예방 양용 백신의 분자설계 및 후선백신구조를 연구, 처음으로 세포질환경중수식유전자가 HIV-1구조단백에 대한 조절통제 메카니즘(机理)을 탐색해 냈다.

  김교수는 유전공학 항에이즈바이러스 살상 ‘미사일’약물의 재 결합, 건립, 표달 및 순화 연구를 끝내고 림상전의 연구를 마무리했다. 김교수는 열성바이러스 병 및 사람과 동물 공동환병 바이러스 병의  RT―PCR의 고속진단합에 대한 건립 및 연구제작을 완성했을뿐만 아니라  ELISA의 고속진단합도 조립했다. 

  유전공학백신에 대한 장기간의 연구를 거쳐 김교수는 부동한 병원(病原)의 생물학 특성, 유전자 클론, 분자설계, 면역유도 연구에서 가치 있는 경험과 실패의 교훈을 축적했다. 그는 고발병성 조류독감 바이러스 H5N1,   H7N1 키메라(嵌合)구조유전자이가활캐리어 백신구조 연구, 구제역 바이러스 O형/A형에 대한 연구 및 광견병 바이러스 유전공학백신에 대한 연구를 완성했다.

  이 외에도 향종양치료성 백신구성연구를 완성했고 11가지 종양세포 체내 외 항종양반응연구를 탐색한 토대위에서 임상전의 일련의 실험연구를 진행했다.

  “과학연구에서 때때로 일어나는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러 학과가 교차된 시기에 아주 작은 변화가 쌓여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수 십년 간의 과학연구생활을 뒤돌아 보면서 과학연구에 대한 김교수의 일가견이다.

  김교수는 1년 365일을 거의 실험실에서 보낸다. 그에게 있어서 출장은 곧 휴식이다. 간혹 저녁 술자리가 있어도 8시면 반드시 돌아와 연구실 문을 연다. 과학연구는 그의 생명의 전부였다.

  ‘학문연구’라는 이 ‘바이러스’는 그 어떤 ‘백신’으로도 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전염병’으로 김교수의 뼈속까지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사진= 김녕일 원사가 연구진 임원들과 학술교류를 하고 있다.

   

  고진감래(苦尽甘来), 과정은 쓰지만 결과는 달다

  현재 전군 유전자프로젝트 중점실험실 주임, 길림성의 인간과 수의학에서 공통으로 생기는 병리학분야 예방통제과학기술혁신센터 주임, 길림성 바이러스 재편성 백신 연구개발공정연구센터 주임으로 활약하고 있는 김교수는 중국 바이러스학과 예방수의학 분야의 학술선두주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오래동안 김교수는 병원(病原),류행병원성, 진단과 백신 등 바이러스병 예방 통제 리론과 핵심적 기술을 둘러싸고 57개 국가 및 성 부급 과학기술 연구과제를 주도했다.

  이런 연구결과는 국가급 과학기술진보상, 성, 부급 과학기술성과상 외에 국가 발명특허 16개를 획득하고 과학기술연구성과 5개를 양도했으며 신형 백신유전자전이생물안전증거 29개를 획득했다.

  ‘973수석과학자’인 김교수는 또 중국 수의학분야에서 제일 처음으로 국가걸출청년기금(1998년)을 획득하고 2000년에 정부 특별수당금을 받았으며 2005년에는 전국우수과학기술사업자, 군 걸출전업기술인재상, 전군 우수교사 등 수 많은 화려한 영예를 안았다.

  김교수는 ‘길림성의 예방통제과학기술혁신센터’와 ‘바이러스재편성 백신연구개발공정연구센터’를 설립, 30여년 간 긴 세월을 걸쳐 ‘바이러스병 예방통제를 위한 핵심기술 연구와 응용시스템’을 구축하여 2012년에 국가과학기술진보 1등상을 수상했다.

  ‘863계획 주제전문가’인 김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SARS, 조류독감, A형 H1N1독감, H7N9독감 등 중대한 전염병 발병상황에 대한 응급처리 연구성과는 실전경험을 거쳐 바이러스학과 인간과 동물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병리학 발전을 추진하는데 특별한 기여를 했다. 특히 김교수는 2014년 ‘허량허리(何梁何利) 과학기술진보상’을 수상했으며 중앙군사위원회로부터 개인 2등공을 수여받았다.

  김교수는 30여년 간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와 새로운 발견을 논문으로 발표했다. 세계 3대 과학저널인 네이처(Nature), 사이언스(Science), 셀(cell)에 유수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일찌감치 업계의 주목을 받았고 그 동안 각종 전문 간행물, 국가 핵심간행물에 무려 6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름에 담은 부모님의 서원(誓愿)이 발현된 것일까?

  2015년 말60고개를 앞둔 김교수는 국가에서 설립한 과학기술영역의 최고 학술칭호인 중국공정원 원사로 되는 가슴 뿌듯한 영광도 안았다.

    

  과학에는 국계가 없지만 과학가는 조국이 있다

  김교수는 1985년부터 새로운 백신 개발에 종사하면서 습득한 유전자와 관련된 각종 소프트웨어 기술과 그 동안 논문을 통해 드러난 그의 연구능력이 바탕이 되어 1990년9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일본 교토대학 바이러스연구소에 초빙되어 에이즈병 유전자공학백신(基因工程疫苗)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김교수는 일본에서 일년도 채 안되는 동안 2년의 연구계획을 완성해 업계를 놀래우기도 했다. 김교수는 일본행을 계기로 1993년 12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한국 서울대학 유전공학연구소에서도 공동연구원으로 활약했다.

  일본연구소에서는 김교수를 수석과학자로 초빙할 의향을 내놓았다. 물론 연구소 소장과 똑 같은 수준의 급여, 저택 제공 등 매력적인 대우가 뒷받침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교수는 일언지하에 연구소의 제안을 거절하고 최종적으로 군사의학과학원 군사수의연구소에 돌아왔다.

  “과학에는 국계가 없다. 하지만 과학가는 조국이 있다. 조국이야 말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뒤심이다.” 김교수의 말이다. 이토록 김교수는 철투철미한 애국주의자다. 과학가 김녕일이 꾸고 있는 ‘과학의 꿈’과 현재 중국에서 전력 추진중인 ‘중국 꿈’은 숙명적으로 일치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대를 이어 나가야 한다

  생명과학에 대한 연구는 멈출 수 없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류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할 영원한 과제로 되고 있다.

  학문연구 외에도 김교수는 후학의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근 500명의 석사, 박사생을 육성, 제자들에게 아주 엄격한 스승으로 정평이 났다. 그는 제자들에게 과학에 대해 신중하고 증거에 립각한 진실한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과학을 존중해야 한다. 과학은 그 어떤 거짓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김교수가 제자들에게 늘 하는 말이다.

  원사는 공식적인 정년퇴직이 70세이다. 김교수는 나중에 퇴직하게 되면 학문에서 대를 이을 더 많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한다.

  "저는 한 인격체가 완성, 승격되려면 꼭 학문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김교수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인격체이다.

  영예의 배후엔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쌓여 있다.

  김교수는 과학연구에 종사하는 30년 간 일심전력으로 사업에만 몰두했다. 사랑하는 두 딸은 어릴적부터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맡겼고 사랑하는 안해도 남편의 연구사업을 위해 자신의 사업을 포기해야 만 했다. 화려한 영예앞에서 녹색 군복을 입은 김교수는 세련되고 당당한 사나이였지만 가족앞에서는 물처럼 부드러운 정다운 인간이었다. 그는 부모님들께 죄진 심정, 자식들에게 빚진 심정을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러나 연구사업은 어쩔 수 없이 가정의 일을 외면하지 않을수 없게 한다. 성공이 나와 이토록 가까이 있는 줄을 일찍 알았더라면 내가 가정에 대한 이 같은 죄책감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교수는 과학연구와 가족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 본적이 없다.

  김녕일은 정녕 과학연구에 ‘미쳐버린’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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